대학 지원서 에세이는 학교 과제물이나 SAT 에세이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후자는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시대적 배경에 대해 논하라” 또는 “고등학교에서 직업 교육을 시켜야 하나” 같이 객관적인 주제를 서술하도록 요구한다.
이에 비해 전자는 지원자의 삶에서 묻어나온 경험, 즉, 자신의 실수, 도전, 성숙 등 지극히 주관적인 이야기를 쓸 것을 요구한다. 영어 과제물이나 SAT 에세이는 여러 가지 책을 참고하거나 의견과 통계를 빌려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면 되지만, 지원서 에세이는 자신의 속을 살펴보지 않으면 쓸 수 없다.
AP 영어수업에서 다각적인 시각을 지녔다는 칭찬과 함께 A학점을 받고, SAT 에세이 만점을 자랑하는 학생이라도 대학 지원서 에세이에는 수준미달을 보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K-12를 거치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사색이라는 여과를 통해 명료하게 표현하는 글쓰기를 배운 적도, 해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글쓰기 기술은 배울 수 있지만, 자신의 내면을 살피는 것은 배워서 되는 일이 아니다. 설사 살펴보겠다고 책상에 앉는다 하더라도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페이스북, 트위터, 카톡을 통해 친구들이 수시로 문자를 보내거나, 연결 신청이 들어오고, 눈요기 사진이 화면에 뜬다. 보여주고, 자랑하고, 인정받기를 원하는 인터넷 세대를 사는 학생에게는 익명으로 남는 것이 지구상의 그 어떤 테러보다 더 무섭다.
타인이 나의 존재를 모르거나 무시하는 것이 두려워서 페이스북에 700명 친구를 만들고, 하루에 500개 문자를 날린다. 접속, 연결, 문자를 통해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과정에서 소중한 것을 잃었다.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과 장소다. 그 결과, 사색이나 고독이란 단어는 일상에서 지워졌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타인의 자랑과 불평을 들어주고, 사진을 구경하면서 그들이 어디에 놀러가고, 무엇을 소원하고, 어떤 삶을 즐기는 것을 꿰뚫고 있지만, 정작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뭘 원하는지, 뭘 해야 할지는 모른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찍은 수십장의 사진으로 자신의 근황을 알리지만, 정작 자신의 삶 속에 맛깔스런 메뉴가 존재하는지 조차 모르고, 안다고 한들 명쾌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지원서 에세이는 자신의 내면을 표출하는 작업이다.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이르는 방법은 한 가지 뿐이다. 끊임없이 방해하는 디지털 훼방꾼과 절교하는 것이다. 그 때 비로소, 나 홀로 사색할 수 있다.
라이너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글쓰기 요령을 알려달라고 부탁한 청년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반드시 필요한 것은 한 가지, 즉, 고독뿐이다. 자신 속으로 파고들어가 그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을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해야 글을 쓸 수 있다.”
글쓰기 도우미 역할 외에 고독은 또 다른 기능을 지녔다.
“나는 산을 정복하려고 이곳에 온 게 아니다. 두려움을 통해서 이 세계를 새롭게 알고, 느끼고 싶다. 이 높은 곳에서는 아무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지탱해 준다. 이제 고독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닌 나의 힘이다.”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 낭가파르바트 단독 등반이라는 기록을 지닌 라인홀트 메스너의 고백이다. 고독이 준 두려움을 통해 메스너가 정복한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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