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탕수수농장 이민 3세인 문대양(73·영어명 로날드 문) 전 하와이주 대법원장은 하와이 이민선조의 발자취와 한인사회가 나아가야 할 미래를 삶으로 보여준다.
그는 1990년 49세에 하와이 대법관에 임명된 후 1993년에 한인 최초로 미국 주 대법원장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2010년 주 정부는 문 전 대법원장의 업적을 기려 신축 카폴레이 지방법원 청사를 ‘Ronald T.Y Courthouse’로 명명했다. 하와이 왕립기사단(Royal Order of Kamehameha |)은 2011년 그에게 기사작위를 수여했다.
문대양 전 대법원장은 2003년 미주한인이민100주년기념사업을 거치며 현직 주대법원장으로 자신이 한국인이란 사실을 자랑스러워 하며 그의 선친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표하곤 했다. 자신의 삶의 멘토가 바로 조부와 외조부 그리고 선친의 가르침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항상 겸손하고 타인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는 조언은 문대법원장을 비롯한 자랑스러운 한인들의 인터뷰에서 어김없이 나온다. 그들의 겸손한 삶의 태도가 바로 다민족사회 하와이 이민사회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넓히고 다져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 듯하다.
문대양 전 대법원장의 할아버지 ‘문정헌’과 외할아버지 ‘이만기’는 1903년 1월13일 이민선조 102명에 포함돼 호놀룰루항에 도착했다. 이들은 사탕수수 농장에서 허리가 휘도록 일을 하면서도 한인이란 민족정신은 잃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한국에서 사진신부를 데려왔고 사탕수수 농장 노동계약이 끝난 뒤 오하우섬 와히아와로 이주해 양복점을 차린다. 할아버지는 아내가 3남1녀를 낳고 26세에 숨지자 혼자 아이들 꿋꿋하게 키운다. 외할아버지 역시 노동계약 만료 후 이발소를 운영하다 한국에 두고 온 아내를 15년 만에 데려 온다. 이후 두 사람은 사돈을 맺어 문정헌의 둘째 아들 문덕만(영어명 듀크 문)과 이만기 딸 이메리는 가정을 이루고 문대양을 낳는다. 할아버지는 ‘바다 같은 큰 인물’이 되라는 바람으로 대양이란 이름을 지었다.
문 전 대법원장은 아이오와 대학에서 심리학과 사회학을 전공하고 아이오와 주립 법대에서 법조인 토대를 닦았다. 문대양 전 대법원장은 “나는 한인 선조들이 어떻게 하와이에 왔고 그들이 흘린 피땀을 안다”며 “내가 한인이란 사실이 자랑스럽다. 가족과 타인에게 감사하고 사회에 감사할 줄 아는 자세는 조부와 외조부, 부모님의 삶에서 배웠다”고 말했다.
문 전 대법원장은 “한인들이 한국과 미국을 배우고 여러 나라의 문화적 다양성을 포용하자”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 부분은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두드러지고 있는 다문화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모범 답안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문 전 대법원장은 은퇴 후 동지회와 태극회등 한인 단체들의 활동에도 관심을 가지며 지난해 11월에는 한인 자본 은행인 오하나 퍼시픽 은행 이사로 새 활동을 시작했다. 문 전대법원장의 은행 이사직 수락 소식은 주류사회에 한인자본 은행의 대외적 이미지를 높이며 한류 경제의 열기를 체감케 했다.
문 전 대법원장은 “공직에서 은퇴했지만 한인 은행의 성장과 지역사회 봉사에 힘을 보태고 싶다”며 “하와이 한인사회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통해 경제력 신장에도 일조해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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