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을 보니 샛노랗던 단풍잎들이 우수수 떨어져 파란 잔디에 수북하다. 물기에 젖어있는 잎들이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싱싱하다. 나무의 본체로부터 떨어졌으나 죽었다는 실감이 되지 않는다. ‘죽을 줄 모르는 죽음으로’라고 썼던 어느 시인의 시 구절이 떠오른다. 나뭇잎은 떨어져 썩을 것이나 죽은 게 아니라는 생(生)의 철학이다. 뿌리는 땅속 깊이 살아서 다음 생을 준비하며 우주의 색깔을 바꾸는 계절의 경이로움 앞에 숙연하지 않은가.
사람의 한 평생도 그런 것 같다. 자식을 낳아 키우고 결혼을 시켜 떠나보내고 단풍을 떨친 한 그루 나무처럼 남는다. 얼마 전 어느 결혼식에서 “이제 아들을 잃고 딸을 잃어야 합니다. 9시 이후에는 전화하지 마시고 방문전화는 한 달 전쯤(?)하세요”라는 주례사를 들었다.
30년 넘게 애지중지 키웠던 아들, 딸에 대한 집착을 떨쳐버리라는 당부겠으나 생각되는 게 많았다. 비움은 충만의 또 다른 이름인데 쉽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지난 시간 속에 새겨진 추억의 무늬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가끔 그리움의 파랑새가 찾아와 텅 빈 공간을 채워 줄 것이며 생의 예쁜 노래도 불러주지 않을까.
나무는 단풍잔치가 끝나면 완전히 벌거벗은 육신으로 서게 될 것이다. 자신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보여주는 차가운 계절과 맞서야 한다. 그래도 두려워할 게 무언가. 예쁜 새싹들을 키웠고 초록 잎들로 무성했고 울긋불긋 고운자태로 한 세상 즐겁지 않았던가. 나목으로 겨울과 마주한다 해서 허망하고 슬픈 것만은 아닐 것이다.
텅 빈 우주가 만상을 피워 올리듯 소우주인 인간도 비움에서 많은 것들을 탄생시킬 수 있으리라. 단풍의 떨어짐은 뿌리의 보존을 위한 희생이고 영원한 생명의 노래가 아닌가. 인간도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떨쳐버리고 죽어도 죽지 않는 나무처럼 의연하게 살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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