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흐르듯 유려하지만 뻗는 손은 절도 있다. 한바탕 북을 치기 시작하자 보는 이의 이목이 그 소리와 몸짓에 사로잡힌다. 그리고는 다시 솜털 같은 손 짓으로 마무리한다. 바로 우리의 전통무용, 승무를 추는 모습이다.
한국의 중요 무형문화재 ‘승무’의 전승자이자 일본 대일사의 주지인 김묘선 씨가 무용 공연을 위해 지난 21일 하와이 무량사를 찾았다. 전날 한국에서 공연을 마치고 무량사 공연 당일 아침에 하와이에 도착했다는 김 무용가지만, 공연 전 마주한 그의 표정에서는 온화함이 느껴졌다.
김 무용가가 하와이를 찾은 이유는 팔롤로 한인양로원 건립을 추진 중인 무량사의 뜻에 무용으로 보탬이 되기 위해서다. 하와이와의 인연에 대해 묻자 그는 “지금 한라함 전통무용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메리 조 프레슬리와 수십 년 전 한국 국립국악원에서 인연을 맺었다”며 “그 인연으로 2~3년에 한 번씩은 꼭 하와이를 찾아 무용강습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번 방문에 대해서는 “여느 때처럼 무용강습 차 하와이로 연락을 했는데 마침 한국 국악인 사이에서도 유명한 무량사에서 양로원 건립을 위해 애쓴다는 소식을 듣고 재능을 나누고자 왔다”고 전했다.
무용가 김묘선 씨는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 이매방 선생(87세, 1987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로, 1990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 예능보유자로 지정)의 수제자로, 한국과 일본, 미국을 순회하며 무용 공연을 펼치는 국악인이다. 그러나 그의 이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2008년부터는 외국인 여성으로서 최초로 일본 시코쿠 도쿠시마현의 대일사 주지를 맡고 있다.
그의 이런 이력에 대한 이야기는 1995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대일사 주지였던 오구리 고에이 승려는, 일본의 초청으로 시코쿠 현에서 승무 공연을 하던 그에게 첫눈에 반했다. 그렇게 인연이 돼 두 사람은 가정을 꾸리고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아들이 아홉 살 되던 해에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처음엔 남편을 이어 주지가 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아홉 살 아들이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훗날 주지가 되겠다’고 하더라. 성인이 될 때까지만 주지를 맡아달라는 아들을 보고, 무용가로서의 내 욕심 때문에 아들의 꿈을 저버릴 순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주지를 받기로 결정한 이유다. 또 그는 “처음엔 일본 측에서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았지만 지금은 연간 30만 순례자의 입소문을 통해 점차 인정을 받고 있다”면서 인정받기 위해 일본문화의 깊은 곳에서부터 공감하기 위해 노력하고 소통했던 날들을 고백하기도 했다.
그는 승려의 길을 걷는 것에 대해서 “어렸을 때부터 배운 승무를, 승려가 되어서 출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또 “오늘 추게 될 승무는 목탁소리로 시작해 염불장단에 맞추어 춘다”고 공연 설명을 시작한 그는 “한국의 전통예술은 대부분이 불교정신에서 시작해 하나의 예술로 정립된 것”이라면서 불교예술에 대한 남다른 존경심을 표했다. 내내 온화한 미소를 짓던 그는 인터뷰가 끝나자 마침내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을 쓰고 무대에 올랐다.
<윤다경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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