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에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그다지 반갑지 않은 오늘 아침, 눈을 뜨자마자 먼 길을 가야 하는 걱정에 마음이 무거웠다. 오늘은 40 여명의 우리 한국학교 아이들과 한 시간이 넘는 먼 곳인 스탁톤의 반석한국학교와 연합하여 우리 나라의 다도를 배우는 야외 수업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전달된 바로는 "한국 전통 차 의례식"을 배운다고 하는데 확실히 무엇을, 어떻게 배우는 건지, 괜히 먼 거리를 가서 아이들이 가진 전통 문화라는 선입관에 다시 한번 ‘지루함’이라는 딱지를 더 깊이 심어주는 것은 아닌지 등의 기우에 머리가 복잡했다.
한 시간 동안 빗 속을 헤치며 달려서 도착한 스탁톤에서 우리를 맞이한 아이들은 뜻밖에도 하나도 빠짐 없이 알록달록 고운 한복 차림들이었고, 우리가 배울 예식을 위한 장소는 아름다운 전통악기의 선율과 아름다운 다기들로 예쁘게 치장되어 있었다. 아이들에게 배례와 생활 다례 시범을 보여 주기 위해 오신 분들의 고운 한복 자태에 매료되어, 나는 몇 번이나 곁눈으로 흘끔흘끔 훔쳐 보았는지 모른다.
언제나 엉덩이를 들썩들썩, 끊임없이 조잘조잘대던 아이들은 한복을 입고 나니 아주 점잖은 얼굴로 평배하는 법을 익히고, 다소곳이 앉아 은은한 차를 음미할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니 흡사 다른 이들을 보는 것만 같아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한복을 입은 아이들이 정갈한 도기를 맞으며 절로 숙연해 지고 스스로의 몸 가짐을 가지런히 하는 것을 보며, 사람이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그 마음가짐이나 태도가 확연히 달라짐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차’는 참으로 우리의 마음을 차분하고 따뜻하게 하지 아니한가? 차를 마시는 우리의 자세는 먼저 그 색깔을 살피고, 향을 음미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살짝 차의 맛을 음미하는 것이다. 그 어디에도 호들갑스럽거나 서두르는 기색은 없다.
일반적으로 오른손으로 찻잔의 몸을 둥글게 감싸고 왼손으로는 그 아래를 받치지만, 나의 기분이 조금은 울적하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나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둥글게 감싸야 할 오른손을 열어 보인다고 한다. 말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옛 선조들의 따뜻한 마음, 그리고 상대방의 기분에 따라 다담의 내용을 조절해 주는 배려에 마음이 훈훈해 짐을 느낀다.
따뜻한 연잎차와 형형색색의 다과, 그리고 기름기가 맛깔 나게 흐르는 다양한 떡으로 배를 든든히 채웠건만, 우리는 정성스레 준비해 주신 점심식사에 또 다시 혼을 뺏겼다. 바깥에 주룩주룩 내리는 비로 인해 선택된 식단임이 분명한 두 가지의 부침과 우리 나라의 대표 음식인 시골비빔밥을 단숨에 해치우고, 맛깔스런 약밥을 후식으로 먹고 나니 순수한 행복의 미소가 얼굴에 절로 퍼졌다.
새빨간 고추까지 정성스레 올려 만들어 주신 녹두 부침을 보니 어렸을 적 녹두대장인 나를 위해 정성스레 부침을 지져 주시던 엄마의 두터운 손등이 불현듯 떠올라 단숨에 나의 마음은 나의 혼, 나의 뿌리가 담겨 있는 그 고향으로 달려 가는 듯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다행스럽게도 새파란 하늘과 백옥같이 하얀 뭉개 구름들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달리는 차창 밖을 바라보며 이십 년 전 현대문학수업시간 리포트를 쓰기 위해 연신 하품을 해 가며 억지로 읽었던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다시 한번 꼭 읽어 보고픈 마음이 간절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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