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어느 날/ 길거리에 버려진 신문지에서/ 내 나이가 56세라는 것을 알고/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아파서 / 그냥 병과 놀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내 나이만 세고 있었나 보다/ 그동안은나는 늘 사십대였다/ 참 우습다/내가 57세라니/ 나는 아직 아이처럼 팔랑거릴 수 있고/ 소녀처럼 포르르포르르 할 수 있는데/진짜 할머니 맹키로 흐르르흐르르 해야 한다니‘ (참 우습다’전문 최승자)
참 우습다. 나도 잊은 내 나이에 다시 한살이 더 붙는다니. 문득 생각이 나서 먼저간 이들의 이름을 적어 보았다.
엄마, 아빠, 언니… 그리고 오다 가다 만나면인사 정도는 하고 지내던 인연을 하나 하나떠올리며 적어나가니 이제 그 리스트도 만만찮게 길다. 인류가 존재하면서 면면히 이어져오던 태어남과 스러짐의 연속이겠으나‘포르르’ 하던 어린 눈에는 미처보이지 않던 저 끝이 이제 ‘할머니 맹크로 흐르르’ 하는 시점에서 겨울의 얇은 햇살 아래 옹송거리며 뒤돌아보니 인생은 과연무상하다.
주먹만하게 작고 따뜻하던 강아지 시절에 데려온 멍멍이가 이제 늙은 이가 됐다. 남들은 시커멓고 커다란 게 짖기는 유난히짖는다고 질색을 하지만 내눈엔그렇게 무연하고 순정하고 천진한 존재가 없다. 새끼때부터 오른 쪽 뒷다리가 시원찮아서 곳잘절룩거리는 모습이 마음 짠했는데 최근엔 부쩍 더 아파한다. 바들바들 떨며 디딜듯 디딜듯 디디지 못하는 게 애처로워 가슴 저린 아픔을 느낀다. 잘 생긴 조각이 무슨 소용이랴, 썩지않고 영원히 요요한 조화가 무슨 아름다움이랴. 스러지는 존재이기에 더욱 예쁜 것을. 돌아보면 치를 떨던 모멸감도 뼈를 깍는듯하던 슬픔도, 타는듯한 분노와 살의도 세월속엔 한줌 먼지와 다름 아니다.
그런데도 사는 동안의 기갈은 아무 때나 기회가 주어지는대로, 남몰래 감춰온 그 흉한 속내를 갈기를 세우고 드러내며 다가온다.
현대미술의 종결자인 피카소를보면 나는 웬지 늘 섬찟한 느낌이 든다. 크로마뇽인을 연상시키는 그의 얼굴은 본능적인 원시인의 야수성과 에너지를 보여주는것 같다. 하나 같이 자살로 생을마감한 그의 여자들. 한 여자를거칠 때마다 하나의 사조를 완성시켰던 그의 예술은 사람의 생명을 제물로 필요로한 창조의 신이었을까. 세상에 공짜는 없다더니예술이란 것은 사람의 상처와 눈물과 피라는 잔혹한 먹이를 필요로 하는 가보다.
힘 없 고소외된 많은 이 들 에게 힘과 위로를 주던로빈 윌리암스는 하루 하 루 를버티는 것이 그리도힘이 들었던걸까. 가정적으로 보이며 따뜻하게 느껴지고 나를 웃게 만들던 빌 코스비는 그가 쟁취한 그 모든 것 위에 더 무엇이 필요 했던 걸까. 사람속, 켜켜에 숨겨져 있는 무상한 것에의 욕구와 기갈이 무섭다.
실상 우리에 필요한 것은 참적은 것일텐데. 예전엔 너희가 내가 마시는 이잔을 마실수 있겠느냐? 라는 질문이 단순히 순교하라는 이야기로 해석되어 질겁을했었다. 최근 어느 책을 보니 우리앞에 놓인 그 잔이란 게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현실 조건이며그 조건을 불평없이 온유한 마음으로 기꺼이 성실하게 받아들이는 게 이 잔을 마시는 것이라는설명을 읽고 감동했다.
몸이 아픈걸 불평없이 이겨내는 것, 물질이부족한 걸 겸손된 마음으로 감사하며 검소히 꾸려나가는 것, 모자란 기럭지, 평범한 용모가 사는데하나도 부담이 되지 않는 것, 남의 성공과 성취가 선망의 대상이되지 않을 뿐 더러 그를 위해 기뻐할 수 있게 되는 것. 그것이 우리가 마셔야 하는 잔이라는 걸깨닫게 하는게 나이라면 흐르르흐르르 하는 할머니 맹크로의 삶도 나쁜 것만은 아닌것 같다.
사는 게 그냥 참 우습다.
그 무섭게 생긴 피카소가 불쑥내민 들꽃 부케에도 어린 아이의천진함이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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