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철수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본 게 지금으로부터 37년 전으로 기억된다. 어느 날 내가 경영하는 작은 카페에 웬 어여쁜 아가씨가 찾아와 나와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그녀는 대뜸 이철수라는 한국 사람이 지금 억울하게 사람을 죽였다는 죄명으로 옥살이를 한다며 같이 구명운동을 하자고 제의했다.
그때 내 형편이 갓 이민 와 큰애까지 태어난 상태라 직접 참여 하지는 못하고 작은 액수의 기부금만 냈다. 그 후 그들은 자주 우리 카페에 모여 회의를 했고 그때 나를 찾아왔던 그 여자 분은 훗날 이 사건을 계기로 변호사가 되었다.
이 일본 여자가 주도해 많은 중국계, 일본계, 한국사람들이 참여하게 되었고 처절한 법정투쟁과 모금운동으로 그는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이철수는 석방 후 불교에 귀의하여 안정을 찾아가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전신 화상을 입고도 기적으로 살아나 우리를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나는 철수 아우와 많은 추억이 있다. 화상 투병 중 철수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셨을 때 내 손으로 어머님의 유골을 샌프란시스코 바닷가에 뿌려드리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이제 철수 아우는 그렇게 그리던 어머니의 품속으로 떠나게 되었다.
오늘 그를 보내는 마지막 고별장례식이 여래사 법당에서 있었다. 40년 전에 모였던 역전의 용사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여 그를 추모했다. 출소 후 그를 좀 더 보살펴 주지 못한 아쉬움이 우리 마음을 더욱 슬프게 했다. 그는 말년에 외로움과 병마와 싸워가며 의사의 마지막 수술권유도 뿌리치며 조용히 우리 곁을 떠나갔다.
철수 아우님! 용서하시구려. 그대가 힘들고 어려울 때 그대 옆을 지켜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오. 이제 모든 짐 내려놓으시고 편히 떠나가시구려. 철수는 우리 아시안들을 뭉치게 해주었고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떠나갔다. 철수 아우님,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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