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화면 너머 창문 밖에 두 남자가 커피를 마시고 있다. 밀짚 모자에 셔츠를 입는 남자는 주홍색 의자에 앉아 팔짱을 끼고 옆에 앉은 파란색 셔츠를 입은 남자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 뒤 빨간색 조끼를 입은 할아버지가가 낡은 벤치에 걸터 앉아 먼발치 서있는 할머니를 주시한다. 흰색 스웨터를 입은 할머니가 다가오자 빨간색 조끼의 할아버지는 몇마디의 말을 하고 둘은 밀집 모자의 남자와 파란 셔츠의 남자를 지나 미술관 안으로 들어간다.
조금 전만 해도 내 눈 앞에 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사라졌고 할아버지가 앉아 있던 낡은 벤치는 그가 오기 전처럼 텅 비어 있다. 마치 그가 앉은 적이 없던 것처럼.
그렇게 내 눈앞 풍경에서 그 노부부는 사라졌고 노트북 화면 너머 창문 밖의 두 남자도 곧 사라질 것이다. 아무리 내 눈으로 그들을 담아보려 해도 나는 미술관으로 들어간 노부부와 아직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두 남자를 잊을 것이다. 그들이 떠난 후 남아있는 주홍색 의자와 낡은 벤치를 담은 풍경을 보며 떠나간 그들을 생각해볼 것이다.
조금 전만 해도 친근해 보였던 그들은 내 기억속에선 낯설고 새로울 뿐이다. 나도 몇시간 후 지금 앉아 있는 이 의자에서 일어나 집으로 걸어갈 것이다. 노부부와 두 남자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도 내 옆에 앉아 있는 여자의 기억속에서 천천히 지워질 것이다.
한번 지난 시간은 돌아올 수 없다. 우리의 기억속에서 매번 새롭게 각색되어 그려지겠지만 그 당시의 공기와 기분, 그리고 우리의 존재를 다시 살아갈 수는 없다.
그 시간 그 공간에서의 나는 당시의 ‘현재’에만 존재할 뿐이다. 그때의 시간도 돌아올 수 없고 그때 그곳의 내 자신조차 돌아올 수 없다. 헤어짐은 그래서 언제나 힘들다.
우린 매일매일 짧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지만, 만남이 길어질수록 매일 반복하던 헤어짐은 특별해지고 그만큼 어려워진다. 시험을 앞두고 피곤한 몸으로 도서관으로 걸어가던 밤. 페이퍼를 집중해서 쓰기 위해 일찍 일어났던 그 새벽의 추운 공기와 외로움. 며칠째 같은 식단의 부실한 저녁밥을 보며 가족을 그리워 하던 날들. 그리고 해질녘 수업을 마치고 노을을 바라보며 쓸쓸히 집에 걸어가던 저녁. 당시에 힘들고 외로웠던 나의 대학생으로써의 날들은 몇주 뒤면 또다시 생소하게 느껴질 것이다.
도서관으로 걸어가던 밤은 친구와 커피를 들고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는 밤으로 각색될 것이고 새벽의 외로움은 열정이 넘치던 나의 모습으로 그려질 것이다. 나를 쓸쓸하게 했던 노을은 버클리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그리고 그 수채화 속 책가방을 맨 내 모습을 그려낼 것이다.
3년반이라는 긴 만남을 끝으로 맞이하는 헤어짐은 쉽지 않을 것이다. 3년반동안 이 풍경의 일부였던 나는 지워질 것이다. 이 풍경속에서 내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내 기억속 내 모습을 매번 아름답게 각색하며 그 그림을 바라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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