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는 한 동안 하이든에 젖어든 시간을 가져 보았다. 봄을 시샘하는 겨울비라고나할까, 오후 내내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고 날씨는 흐린데다가 폭풍우가 몰아쳤다. 웬지 산다는 것이 하늘을 덮고 있는 구름의 무게 만큼이나 무겁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FM라디오에서 하이든의 교향곡(88번 2악장)이 흘러 나왔다. 무겁고 장중한 것이 하이든답지 않은 곡이었다. 마치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작품을 듣는 느낌 같았다고나할까, 그러면서도 어딘가 편안한 느낌… 룰을 지키고 있는 것이 역시 하이든은 하이든의 작품이었다.
하이든의 음악이 주는 편안함… 그것은 어쩌면 산다는 것의 잔재주… 과도한 객기가 낳은 혼돈과 괴로움… 그런 것에서의 해방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하이든의 작품을 듣고 있으면 어쩐지 어린 시절에 먹던 토란국이 떠오르곤한다.
토란국은 제사 음식이기에 간이 심심하고, 고추가루같은 자극적인 양념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기에 토란국은 토란국만의 심심함… 그러나 위장을 따스하게 데워주는 고소하고 토종 음식 특유의 맛이 있다.
입에 자극적인 음식만이 꼭 좋은 음식은 아닐 것이다. 알토란이나 신선한 버섯… 식재료만 좋다면 있는 그대로의 맛이야말로 갖은 양념으로 가공한 맛에 비할 바 아니다.
우리가 늘 피곤해 하는 것도 아마 기본을 무시하고 늘 과도한 양념에만 의존해 사는 탓은 아닌지… 하이든과 모차르트는 당대 최고의 작곡가였자, 선후배 관계였지만 라이벌 의식으로 서로 반목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하이든은 후배 모차르트의 재능을 높이 샀으며, 그 천재성을 인정하는데 인색하지 않았다고 한다. 모차르트 역시 하이든만은 존경하는 선배로서 깍듯한 예우와 함께 그의 작품을 참고삼는데 서슴치 않았다고 한다.
하이든이 위대할까, 모차르트가 위대할까? 음악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이런류의 가십으로 논쟁거리를 삼고 싶을지도 모르지만, 누가 더 위대했을까하는 문제는 차치하고 만약에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하이든을 우선 선택하고 싶다. 왜냐하면 어딘가 피곤해 보이는 천재보다는 하이든의 삶이 훨씬 더 안정감있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따스하면서도 넘치지 않는 하이든의 음악들을 듣고 있으면 항상 마음이 편안해 진다. 큰 바위얼굴… 그것은 꼭 천재적인 기교… 화려한 재능으로 점철된, 눈에 보이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묵묵히… 뚜벅뚜벅 자기 길을 걷는 삶의 자세도 거장의 모습이다.
모차르트는 하이든의 현악 4중주를 사모한 나머지 자신도 현악4중주를 작곡(1785년), 하이든과 함께 연주회를 열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후발주자 모차르트의 재능은 이미 하이든을 추월하고 있었고, 하이든이나 모차르트 또한 스스로 그것을 감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선배의 자존심을 구기고 싶지 않았으며, 진심으로 작품의 평가를 바랬고, 하이든 또한 모차르트의 작품을 들은 뒤 ‘고백컨데 진정으로 가장 위대한 작곡가’라는 찬사로 화답했다고 한다.
감격한 모차르트는 현악 4중주 6곡을 모두 하이든에게 바쳤고, 이 곡들이야말로 오늘날 찬사해 마지 않고 있는 모차르트의 ‘하이든 현악 4중주’ (쾨헬387, 421, 428, 458, 464, 465)라는 곡들이다.
천재는 신이 내리지만 그 천재를 알아보는 것은 오직 위대한 인간의 눈만이 가능한 것은 아닐까? 천재였던 모차르트는 조울증에 시달리며 짧고 우울한 삶을 살았지만 인간 하이든은 음악으로의 피안… 도인같은 삶을 살다갔다.
모차르트를 알아봐 주었던 하이든, 아니 어쩌면 하이든이야말로 모차르트에게 있어서 단순한 선배가 아닌 거대한 큰 바위… 그리운 어머니의 품과 같은 존재는 아니었을까? 인류가 낳은 가장 뛰어난 음악형식이라는 현악 4중주… 그 중에서도 가장 걸출하다는 모차르트의‘하이든 현악4중주’들을 들어보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