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기대하며 시작한 작은 다짐이 있다. 매일 한 가지씩 새로움을 경험하자는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이 야기하는 뇌기능 퇴보에 관한 기사를 읽고 시작된, 오직 ‘생존의 문제’에만 매몰시키는 무자비한 현실에 대한 작은 반항이라 할 수 있을까.
새로운 사람과 해본 적 없는 종류의 대화를 시도해본다든가, 들어본 적 없는 음악을 들어보고, 평소라면 절대 열어보지 않을 책을 골라 한 페이지라도 읽어본다든지, 별 생각 없이 타던 출퇴근길 프리웨이 대신 조금 복잡하지만 상점이 즐비한 로컬 길을 이용해보겠다는 정말 소소한 다짐들이다.
스스로를 너무 잘 알고 있는 탓에, 너무 과도한 행동강령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평소 즐겨먹던 채소를 다른 방법으로 요리해보는 시도 정도만으로도 성공적이라 스스로를 칭찬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면서 바쁘게 반복되는 일상이 얼마나 잔인하게 ‘새로움’이란 단어를 귀찮게 느끼게 하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실패할 리 없는 익숙한 식당에 들어가, 그 역시 맛을 자신 있게 예상할 수 있는 메뉴를 시켜, 새로운 탐험이나 관계 형성을 위한 노력이 필요 없는 이미 너무도 편해진 누군가와 마주앉아 있는 일들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하고 있는 스스로를 인지한 순간의 실망감이란.
하지만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과 안정감은 위대하다. 고단한 하루 끝에 더욱 간절해지는 따스함. 그 안에서 쉼을 느끼는 순간, 그 소중함은 더할 나위 없이 커진다. 흔치 않게 어쩌다 내리던 비의 끝에 결국은 평소 지루하다며 불평하던 캘리포니아의 햇볕이 진심으로 고마워지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까.
가끔 친구와 “모르고 살아도 좋을 것들을 너무 많이 배우게 된다”는 뼈있는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굳이 새로워지려는 노력 없이도, 마치 시간을 사용한 대가인 냥 차곡차곡 쌓이고 마는 낯선 경험과 그로 인한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감내하며 살게 된다는 넋두리다.
지금 보이는 것들은 예전의 그것들과는 분명 다르다. 새로움이라는 단어를 강박처럼 짐 지우며 살지 않아도 이미 우리가 사는 세상은 스스로의 변화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불완전성과 다양성의 산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늘어진 고무줄을 원래대로 줄이는 일이 불가능한 것처럼, 이미 확장된 경험이나 사고가 다시 줄어드는 일 역시 불가능하다 할 만하다.
그러고 보면, 날마다 작은 새로움 하나를 찾아보자는 시도보다는 이 전쟁 같은 불완전성 한가운데서 ‘나’라는 존재를 완전하게 용납해주는 익숙한 누구 혹은 무엇에 대한 고마움을 날마다 새롭게 하는 일이 오히려 ‘새해 다짐’에 걸맞은 의미 있는 행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가끔 예술작품을 감상하면서, 감동하기에 앞서 과도하게 작품의 의미를 찾으려는 어리석은 시도를 하곤 한다. 이미 의미 가득한 무언가를 두고, 마땅히 가장 먼저 가져야할 감상을 갖지 못하는 모습이, 흡사 익숙함의 진정한 의미를 무시한 채 인공적으로 새로움을 각색하고 진열하려고 애쓰는 스스로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여 어쩐지 씁쓸해진다.
삶의 태도에 따라 익숙함과 새로움의 거리가 결정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익숙함의 위대함을 날마다 새롭게 각인하는 일. 한해의 소망과 다짐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아깝지 않은 의미있는 시도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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