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수(뉴잉글랜드 전 한인회장)
몇 년 뒤 서독 뤼브케 대통령의 초대로 박정희 대통령이 서독을 방문하게 됐다. 그때 우리에게 대통령 전용기는 상상할 수도 없어 미국의 노스웨스트 항공사의 전세기 계약을 체결했지만 쿠데타 군에게 비행기를 빌려줄 수 없다는 미국 정부의 압력 때문에 그 계약은 일방적으로 취소됐다.
그러나 서독정부는 친절하게도 국빈용 항공기를 우리나라에 보내주었다. 이처럼 어렵게 서독에 도착한 박정희 대통령 일행을 거리의 시민들은 플래카드를 들고 뜨겁게 환영해 주었다. “코리안 간호사 만세, 코리안 광부 만세, 코리안 엔젤 만세.....” 박대통령은 창밖을 내다보며 감격에 겨워 땅케, 땅케(Thank you)만을 반복해서 외쳤다.
서독에 도착한 박대통령 일행은 뤼브케 대통령과 함께 광부들을 위로 격려하기 위해 탄광에 갔다. 고국의 대통령이 온다는 사실에 그들은 500여명이 들어갈 수 있는 강당에 모여들었다. 박대통령과 서독 대통령이 강당에 들어섰을 때 작업복을 입은 광부들의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대통령의 연설이 있기에 앞서 애국가가 흘러 나왔을 때 이들은 목이 메어 애국가를 제대로 부를 수가 없었다. 박대통령은 단지 나라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이억 만 리 타국에 와서 땅속 1,000미터도 더 되는 곳에서 얼굴을 시커멓게 그을려가며 힘든 일을 하고 있는 제나라 광부들을 보며 목이 메어 말이 제대로 나오질 않았지만 슬픔 감정을 억누르고 연설을 시작했다.
“우리 열심히 일합시다. 후손들을 위해 열심히 일합시다.” 눈물에 잠긴 목소리로 박대통령은 계속 열심히 일하자는 말만 반복했다. 가난한 나라 사람이기에 이억 만 리 타국 땅 수 천 미터 지하에 내려가 힘들게 고생하는 광부들과, 딱딱하게 굳어버린 이방인의 시체를 닦으며 힘든 병원 일을 하고 있는 어린 여자 간호사들 그리고 고국에서 배곯고 있는 가난한 내 나라 국민들이 생각나서 더 이상 참지 못해 대통령은 눈물을 흘렸다. 대통령이란 귀한 신분도 잊은 채 소리 내어 눈물을 흘리자 함께 자리하고 있던 광부와 간호사 모두 울면서 영부인 육영수 여사 앞으로 몰려 나갔다.
어머니, 어머니 하며 육 여사의 옷을 잡고 울었고 그분의 옷이 찢어질 정도로 잡고 늘어졌다. 육 여사도 함께 울면서 내 자식같이 한명, 한명 껴안아 주며 “조금만 참으세요”라고 위로하고 있었다.
광부들은 뤼브케 대통령 앞에서 큰절을 하며 울면서 “고맙습니다, 한국을 도와주세요, 우리 대통령을 도와주세요, 우리 모두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를 수없이 반복했다.
뤼브케 대통령도 함께 울고 있었다. 연설이 끝나고 박대통령 일행이 강당에서 나오자마자 미처 강당에 들어가지 못한 광부들이 떠나는 대통령과 육 여사를 붙잡고 “우릴 두고 어디 가세요. 고향에 가고 싶어요, 부모님이 보고 싶어요” 하며 떠나는 대통령 일행을 놓아줄 줄 몰랐다.
호텔로 돌아가는 차에 올라탄 박대통령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 옆에 앉은 뤼브케 대통령은 손수건을 건네주며 “우리가 도와주겠습니다, 서독 국민들이 도와주겠습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서독 국회에서 연설하는 자리에서 박대통령은 “한국은 여러분의 나라처럼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습니다.
한국이 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하여 이기려면 분명 경제를 일으켜야 합니다. 서독이 한국을 도와주세요. 그 돈은 꼭 갚겠습니다. 저는 거짓말을 할 줄 모릅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도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을 이길 수 있도록 돈 좀 빌려 주세요”를 반복해서 부탁했다. (계속)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