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 차남의 병역면제 등 각종 의혹으로 국회 인사청문회를 가까스로 통과한 이완구 신임 총리가 지난 20일 강원도 철원 육군 15사단을 방문해 “튼튼한 안보와 국방이 없으면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며 “여러분들의 헌신과 애국심, 고생으로 부모님은 물론이고 전 국민이 안심하고 (설)연휴를 보낼 수 있게 돼 대신 고마움을 전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총리가 방문한 육군 15사단은 반세기 전 내가 학업을 중단하고 자원입대해 청춘을 바친 바로 그 부대라서 소회가 남다르다. 그때 내가 남달리 애국심이 강해 자원입대한 것은 아니지만, 이 총리같이 석연찮은 이유로 병역을 면탈해 병역의무의 평등성을 훼손한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군복을 입고 장병들 앞에 나타나 천연덕스럽게 국가안보와 애국심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남들 다 가는 군대 안 가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탈법을 저지른 사람이 국가에 대한 헌신과 애국심을 말하다니, 이는 애국의 상징인 군복을 더럽히고 국가의 부름에 응한 장병들을 모독하는 짓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안보관계 장관회의 참석자 16명 중 군필자는 고작 3명으로 이 대통령을 비롯해 총리, 국정원장, 외교통상부 장관 등이 모두 우스꽝스런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박근혜 정부도 마찬가지다. 이완구 총리를 포함해 경제부총리, 외교부 장관, 보건복지부 장관 등 현 정부 각료의 병역면제와 대체복무 비율은 무려 50%에 이른다.
‘애국’을 입에 달고 사는 그들의 아들들 또한 수핵탈출증, 사구체신염 등등 병명도 생소한 질환을 이유로 군대에 안 간다. 권력을 쥔 자들은 아들들에게 부와 함께 병역면제도 대물림한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가수 유승준은 “반드시 군대에 가겠다”는 약속을 어긴 죄로 2002년 고국에서 추방당한 후 국제 미아신세가 되어 오늘도 지구촌을 떠돌고 있다. 그의 나이 어느덧 38세에 이르렀지만 법무부의 허락 없인 다시는 고국 땅을 밟지 못한다고 한다. 대역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이제 그만 관용을 베풀 때가 되지 않았는가.
유승준의 미국 시민권 취득에 분노하는 한국에서 해마다 6천여 명의 임산부들이 기를 쓰고 미국에 원정출산 하러 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가수 MC몽(본명 신동현 35세) 또한 병역 문제로 패가망신한 젊은이다. 재판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지만, 그는 아직도 병역기피를 위해 멀쩡한 생니를 고의로 뽑았다는 악성 루머에 시달리고 있다. 대중의 곱지 않은 시선 때문에 방송 활동이나 공연은 엄두도 못 낸다고 한다.
병역에 관한 한 유승준과 MC몽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이완구 현 총리에 비해 죄가 더 무겁다고 생각지 않는다. 이유야 어떻든 군대 안간 건 매한가지 아닌가.
이 총리의 아들은 이례적으로 5차례에 걸친 신검 끝에 병역면제를 받았다. 잘난 아버지를 둔 덕에 가능했을 것이다. 만일 유승준과 MC몽이 이 총리와 같은 아버지를 뒀더라면 그토록 가혹한 시련을 겪지는 않았을 것이다.
병역기피자를 대통령으로 뽑아줄 만큼 아량이 넓은 국민들이 한낱 가수가 설사 군대 안 가려고 잔꾀를 부렸기로서니 그들에게 돌을 던지는 것은 이율배반이 아닐 수 없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이다. 어찌 그들을 탓할 수 있으랴. 병역기피자가 대통령이나 총리가 되는 일이 더는 없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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