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 해물을 좋아한다고 떠들어 댄 덕분에 맘씨좋은 아저씨가 팔뚝만한 생산을 네마리나 가져왔다. 입이 벌어져 표정관리도 못하면서 애써 잡은 걸 왜 남 주냐고 했더니 자신은 물고기 잡을 때 눈을 맞추었기 때문에 못먹는단다. 전혀 예민하게 생기시지도 않은 분이여서 참 의외다, 싶으면서도 대단히 시적으로 느껴졌다.
박완서 작가가 다음에 태어나면 혼자 산속에서 농사 짓고 살다가 솟증나면 키우던 개라도 잡아 먹겠다고 쓴 걸 읽고는 그 결기가 섬찟 무섭게도 느껴졌었는데 이 분은 웬걸, 덩치도 산만하고 성격 또한 느긋해 뵈는데 미물과 부딪친 한번의 시선때문에 먹을 걸 못먹다니… 흠.
괜히 아무데서나 감성이 뛰어난 예술가인 척 폼잡지 말아야겠는 걸. 하긴 이렇게 억척같은 나도 한때는 예릿예릿한 시절이 있었다. 미국엘 와 두어해 지난 후인데 몬트레이에 놀러 갔다가 싱싱한 생선 한마리 사왔다. 하도 신기해 사오기는 했지만 내심 잡을 생각이 까마득했다.
그렇지만 앞으로 긴긴 세월, 식구들의 먹을 걸 챙겨야하는 앞날의 내 삶이 눈앞에 훤하게 어려 눈을 딱 감고 도마위의 생선을 향해 칼을 내려쳤다. 잘못 맞은 생선은 그대로 대굴대굴 굴러 내 발위에 떨어지고 나는 혼비백산해 비명을 지르며 팔팔 뛰다가 어찌어찌 요리를 해 저녁상에 올렸다.
그날 생선 한점 입에 넣었다가 두드러기가 나 고생했다. 까마득한 옛날 얘기다. 내 몸무게가 물가의 버들가지 모양으로 90파운드가 채 안되던 시절의 이야기다. 우리는 변한다. 변화하면서 새로운 무엇이 되기도 한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듯. 사십년이라는 유장한 세월이 흐른후 우람한 팔뚝을 자랑하는000 파운드의 중년이 된 나는 준비없이 바닷가에 놀러가 살아있는 광어와 눈을 맞춘 즉시 과일 깍는 칼 하나로, 도마만큼 큰, 살겠다고 두 눈 똑바로 뜨고 나를 쏘아보며 길길이 뛰는 놈을 두마리 씩이나 단숨에 회쳐내는 씩씩한 대한의 아줌마가 되어 있었다.
장하다! 인류의 역사속에 면면히 이어오는 식욕에의 절실한 집념! 우리는 변한다. 문화도 변하고 기술도 변하며 사상도 변하고 가치관도 변한다. 사랑도 변하고 성격도 변한다. 얼마 전 성당에서 오랜동안 얼굴을 알고 지낸 분이 내게 예전엔 말걸고 싶지 않게 까칠해 보였는데 이제는 놀랄만큼 편한 아줌마가 됐다면서 자신이 곁에서 본게 아니라면 믿기 어려울 정도란다.
흠, 칭찬은 칭찬 같은데 웃어야 할까, 또 한번 까칠하게 덤벼야 할까, 망설여지는 상황이었다. 한 사람 한사람이 세월속에 변하는 건 어떻게 해든 목숨 보존해 살아 보겠다고 갖은 몸부림치는 거라 치더라도 20세기부터 작금의 시절까지 테크놀로지가 변하는 걸 보면 눈이 팽팽 돌 지경이다.
어렸을 때 본 티브이 드라마, 스타트랙에선 컴퓨터라는 게 커다란 방을 하나 가득 채워놓게 덩치가 산만하고 무슨 정보를 입력, 출력 하려면 웽웽 소리도 유장하게 한참을 삐삐뽀뽀 소리를 내지른 다음에야 한마디 답이 나왔었다. 그래도 그것을 보면서 흠, 미래엔 저렇게 된단 말이지, 하며 제법 신선한 상상력의 시원함을 느꼈었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최신첨단기기를 보면 어지럼증이 생겨 이제는 슬슬 지구에서 내려가도 되겠다 싶다.
지금 어린애도 갖고 있는 쌜폰이 그 시절에 있었다면 육이오때 그 피눈물나는 혈육간의 이별이 없었을 것이고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네 마네 설전할 일이 없었을 것을.
길에서 본 내 며느리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시에미가 곁을 스치는지 마는지도 모르고, 허구헌날 컴퓨터만 들여다보며 연명하는 왕따 인생들은 이판사판 총이나 한번 휘둘러보고 죽고싶다는 건지 지 죽을 구덩이인지도 모르고 IS 에 몸담아 보겠노라 가족곁을 떠나고.. 아아, 정말 우린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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