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버클리에 국문학 분야에서 저명하신 권영민 교수님이 강의하신다고 하여 독특하게 미국에서 한국 문학을 배우고 있다. 대학을 미국으로 오는 바람에, 한국문학과 멀리하던 중 좋은 강의를 마지막 학기에 공부할 수 있어 행운이라 생각한다.
덕분에 매주,작품과 관계되는 한국역사와 그 시대의 삶에 대해 배우고 있는데, 최근에 배웠던 작가가 고등학교 언어시간에도 인상깊게 보았던 작가 ‘이상’이다. 그는 1930년대 작가로 일제강점기시대에 시와 소설부문에서 활약했던 작가이다. 작품 당시 외국에 한번 나가보지 않은 그이지만, 그의 작품은 몇 십년이 지난 지금 외국에서 높이 평가받을 정도로 굉장하다. 아니,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라는 표현이 더 맞을 듯하다.
혹시 그의 작품을 모른다면 지금 검색해보시길 바란다. 이상의 시 ‘오감도’에는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라는 같은 말이 계속 반복되어 있으며 띄어쓰기가 파괴되어 있다. 또한, ‘선에 관한 각서’라는 시에는 숫자와 영어가 배열되어 있고, 소설은 말할 것도 없다.
종생기라는 소설에는 소설 속에 이상 작가 자신이 잘못 써놓고, 소설에 잘못된 글자가 있다는 말을 쓰기도 하며, 어떤 이야기가 아닌 자신 의식의 흐름을 나열하며, 그렇게 소설이 끝난다. 그의 작품들을 보며, 권영민 교수님은 일제강점기 시대에 일본인들의 방식이 아닌 우리만의 방식으로 앞서나가자고 하는 이상의 도전을 볼 수 있다고 하셨다.
정말 천재이다. 나에게 천재란 그렇다. 머리가 좋은 사람, 특출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닌 자신이 만든 독특한 기준을 지독한 근성으로 정답으로 입증해버린 사람이다. 뉴튼의 물리학 기준을 뒤엎은 아인슈타인이 천재이고, 회화에서 공간의 일탈을 이끈 피카소가 천재이고, 여자는 이래야 하며 발레는 이렇다하는 기준을 일탈시켜버린 이사도라 던컨,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제강점기의 문학의 틀을 깨버리고 전혀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버린 이상이 천재이다.
그게 바로 근성이며, 예술을 하는 사람이란 더 그래야 하는 것 같다. 모든 기준을 거부한 채, 나의 기준을 만든 사람. 대신 그 기준을 실력으로 입증할 수 있는 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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