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연 빛의 입자들이 창문을 향해 느릿느릿 날아들고, 마루 위엔 블라인더 줄무늬의 햇살이 선명하다.
밤새 잠을 설친 탓일까, 우울의 그림자가 연기처럼 소리없이 다가들고, 알수 없는 불안이 부유물처럼 마음에 어지러이 떠다닌다. 어느 낯선 외지로 가고싶다.
그 곳에서 끝없이 걷고 또 걷다가 언젠가 어디에선가 잃어버린 나를 주워오고싶다. 어디로 흩어졌는지 알길 없는 나, 이제는 알아보지도 못할, 잃어버린 것인지, 잊어버린 것인지 모르는 그 조각들을 그리워한다.
거실을 채운 적막을 부수고 일어나 점퍼를 걸치고 챙이 넓은 모자를 쓴다. 보도 위 하얗게 빛나는 햇볕을 자박자박 밟으며 걷는다. 저 멀리 와일드 캣 캐년의 푸른 언덕이 평화롭고 드문드문 숲에 묻힌 집들이 마치 어느 포도원의 샤토를 보듯 그림처럼 아름답다.
멀리서 보이는 것들은 경치든 사람이든 모두가 아름답다. 그리고 평화롭다. 슬픔과 고통이 그 안에서 들끓고 있다해도 우린 멀리 있는, 우리가 자세히 알지 못하는 대상에 향수병을 앓듯 평화를 부여하고 아름다움을 덧칠한다.
지금 한없이 평화롭고 행복하며 선하기 짝이 없는 얼굴을 하고있는 내 안에서 들끓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어릴 때는 있고 없음에 집착하였고, 젊을 때는 이름 석자를 위하여 전전긍긍하였고, 나이 제법 들어서는 행복이란 단어를 붙들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내려놓는 법을 터득하지 못하여 여전히 연습과정, 삶의 인턴과정을 살고있다. 이 모든걸 이루었든 이루지 못했든 상관없이 긴 세월을 항상 원하기만 하면서 살아왔다. 아직도 무지가 창피하고, 없는게 속상하고, 잘나가는 사람들을 질투하며, 내놓는 것이 아깝고, 비우기보다 채우는 것을 좋아한다.
속물근성을 욕하면서 때로 더 속물적이고, 남을 부추키면서 나는 뒤로 숨는다. 선함에 감동 받기보다 하나라도 깎아 내리려하고, 남의 실수를 감싸 안기보다 은근히 드러낸다.
너무나 사소한 일들, 이해관계들에 얽매여 수없는 얼룩들을 만들고, 순간의 이익 때문에 아귀다툼도 하고, 약간의 불편함 때문에 남의 약한 부분을 슬쩍 외면하기도 하고, 어지간하면 선심을 써도 될만한 일에도 악착같이 달려들어 내 것을 챙기고, 어찌나 많은 다툼을 하며 살아왔는지…
그 뿐이랴, 무식함에 보내었던 경멸에 찬 눈빛, 나를 힘들게 한다고 비수처럼 내던졌던 말과 행동들, 날 알아주지 않는다고 화살처럼 쏘아댔던 분노, 내가 휘두른 혀의 폭력과, 눈빛으로 입힌 상처들과, 표정만으로 저지른 살의는 또 얼마나 많을 것인지…모두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싶다. 이 모든게 나 때문인 것을.
삶이란 이다지도 비열하고 구차하고 때로 악하기까지 할수 있는 것. 모두가 다 그런거라고 스스로 위안 받기보다 다만 어리석었음을 용서받고싶다.
그리고 나 자신을 용서하고싶다. 햇살 눈부신 거리 위에서 가슴 아픈 기억의 물결에 휩쓸리다, 잃어버린 것도 아니요 잊어버린 것도 아닌, 내가 버렸던 나의 파편들을 줍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가 어느 집, 앞마당 나무들을 손질하고 있던 할아버지 한 분이 눈인사를 건넨다. 동네 길이건 등산 길이건 눈이 마주치면 그저 미소 겨우 건넬뿐이었는데 Hi, How are you! 활짝 웃어준다. 할아버지가 큰소리로 응답한다. Beautiful day!!!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