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쓰는 경우는 다음 세 가지이다. 뭔가 인생에 도움이 된다 싶은 새로운 사실을 알았을 때 그것을 기억하기 위해 기록을 남긴다. 어떤 일 때문에 감정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이제 그만 벗어나야겠다 싶을 때 나를 객관화시키는 방법으로 글쓰기를 택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는 정치적 문제에 대해 나의 입장을 피력하고 지인들과 공유하고 싶을 때 글을 쓴다.
1, 2번의 경우는 누군가에게 일부러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다. 3번은 이 칼럼의 성격상 지양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럼 뭘 써야 하지? 첫 마감을 앞두고 며칠 내내 궁리를 해 보았지만 좀처럼 떠오르는 생각이 없다. 아무 생각이 없다는 아이들을 채근하여 뭐라도 써 내라고 압박을 가하던 국어 시간이 반성된다.
핑계 같지만 그러다 문득 내가 이렇게 주저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한국에서는 나를 드러내는 것이 미덕이 아니었다. 학창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에 나와서는 더 그랬다. 대세가 뭔지 눈치를 잘 살피다가 적당히 묻어 가는 것이 최선의 팁이었다고나 할까. 더군다나 요즘 같아서는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여론몰이의 희생양이 되어 남은 인생 영영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 작은 시골 마을에 어디 소속 하나 없이 조용히 묻혀 사는 내게 누가 그렇게 관심을 갖겠냐 싶으면서도, 공개된 글을 통해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판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분명 ‘두려움’이다.
게다가 나에게 글쓰기란 단지 적당히 멋스러운 단어를 골라 문장으로 잘 엮어 늘어 놓는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은밀한 속내를 다 까발리는 일이나 다름없다. 문제는 요즘 내 속이 그야말로 썩어가고 있다는 것인데, 내가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저 땅에서 매일 전쟁 같은 소식이 들려오기 때문이다. 실망과 분노, 안타까움이 뒤범벅된 무거운 감정이 나를 온통 지배하고 있다. 이를 어쩌나. 이 참에 ‘아름다운 글’을 한번 써 봐야지 하고 칼럼 연재에 선뜻 응했는데, 왠지 벌써부터 편집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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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아영씨는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남편의 유학 때문에 지난해 휴직을 하고 데이비스(Davis)에 왔다. 친정엄마 찬스를 쓸 수 없는 이곳에서 수개월간 생존 투쟁을 벌인 끝에 이제 조금 ‘살만하게’ 되었다. 여유롭게 사는 법, 화를 다스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 미국 생활 최대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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