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들의 대국 구경
신선들 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옛말이 있다. 난가지락(爛柯之樂)이라고 하는 중국고사에서 연유된 바둑을 일컫는 말이다.
중국 진(晉)나라 시절, 석강 상류의 산골마을에 왕질(王質)이라고 하는 나무꾼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산에 나무를 하러갔다가 점점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한참을 들어가다 보니 오랜 나무 아래서 두 사람의 신선이 바둑을 두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왕질은 바둑 두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서 나무하는 것도 잊고 옆에 앉아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보고 있는데 한 신선이 복숭아를 꺼내주면서 먹으라 하였다. 왕질은 그것을 받아 먹고나니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바둑 두는 것을 구경할 수 있었다.
어느덧 해가 기울고 바둑이 끝나가자 신선이 나무꾼 왕질의 도끼를 가르키기에 살펴보니 도끼자루가 썩어 있었다.
깜짝 놀라 제정신이 돌아온 왕질은 나무도 못한 채 깊은 산속에서 내려와 자기가 살던 마을로 돌아왔다. 하지만 식구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모르는 마을사람들만 그의 집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제사를 지내느라고 분주하였다. 이상하게 생각되어서 주위 사람에게 물어보니 이 집안의 증조부인 왕질이라는 분의 제삿날이라고 한다. 그의 자손들이 산속에 나무하러 갔다가 오지 않는 날을 제삿날로 삼았다는 것이다.
깊은 산속은 신선들이 사는 도원경(桃源境)이었고 그곳에서 바둑 한판 두는데 백여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는 옛이야기이다.
중국 고사 술이기(述異記)에서 나오는 우화다. 도락(道樂)에 빠져 세월 가는 줄 모른다는 고사성어이기도 하다.
-고영일 씨의 부고
워싱턴 인근에는 70년대에 고국을 떠나온 초창기 이민세대들이 많다. 한국의 어려웠던 시절 잘살아 보겠다고 태평양을 건너 미국의 수도로 이민을 왔었다. 필자도 그중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어떤 사연으로 어떻게 살았던 이제 미국에서 산 날들이 한국에서 태어나서 살았던 날보다 더 많은 날들이 지나가고 있다. 이제는 어쩌면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타국 땅에서 묻혀야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동안에 가정들도 꾸미고, 아이들 학교도 보내고, 돈벌이도 했어야 했고, 이럭저럭 세월이 유수처럼 흘러간 것이다.
어느새 중년을 넘어 노년이 된 사람들이 주변에는 많아졌다. 이민 초창기 시절에 만나게 되어 서로 알고는 지내면서도 살아가는 생활과 환경이 틀려 일부러 만나기는 어렵다.
허지만 가끔 오다가다 한인타운의 음식점이나 기원에 나갈 때면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사람들의 소식을 들을 수가 있다. 지난 세월을 못 잊는 옛 바둑 동호인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 들려온 슬픈 소식은 고영일 씨 부고다. 초창기 워싱턴 바둑동호인회 창설 멤버이며 워싱턴 이민사회의 명사이시기도 하다. 워싱턴 바둑계의 맏형으로 바둑이라면 만사불문하고 아낌없는 성원과 자리를 마련해주시던 고영일 씨. 오랜 숙환으로 투병중이셨는데 애석하고 안타까운 비보를 들은 것이다.
지면을 통해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고(故) 고영일 씨의 명복(冥福)을 빈다. “영일 형님. 평생 난가지락의 삼매경에 빠져 지내셨으니 여한(餘恨)은 없으실 거예요.” choi1581@daum.net
풍운재 최환정(Charles Choi)
미국바둑협회(AGA) 공인 7단
워싱턴바둑동호인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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