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독거노인들은 크게 세 부류로 분류된다. 첫째는 정부보조 아파트나 노인아파트에 거주하며 사회적 고립을 피하면서 활발한 노년생활을 보내는 이들이다. 둘째는 자식이 거주하는 지역 근방에 아파트나 작은 집을 얻어 가족들의 도움과 왕래를 기반으로 생활하는 노년층이다. 셋째로는 자녀들과의 교류가 끊어진 채 정부 보조혜택 등에 대한 무지로 힘들고 고독한 말년을 보내는 불우한 노인들을 꼽을 수 있다.
“따로 또 같이” 사는 노인들
버지니아 페어팩스 소재 카운티 정부보조 아파트단지. 저임금 가정에 대한 혜택을 위해 지어진 이 아파트 단지내 50여 세대는 한인 독거노인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배우자가 생존했을 때 이곳으로 와서 배우자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현재까지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한달에 집값으로 내는 돈은 평균 150달러 정도로 식비, 의료비 등을 감안해도 생활에 큰 불편함은 없다.
각자 살아온 환경도, 인생의 흥망과 이민 온 이유 역시 제각각이지만 말년의 생활은 엇비슷하다. 이들은 고독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생활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아픈 이웃이 없나, 오늘은 누구에게 무슨 소식이 있나 서로의 집을 들러보는 것은 이들의 중요한 일과다. 한 집에 모여 한국에서 보냈던 젊은 시절, 고단했던 이민 살이, 자식들에 대한 갖가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웃으로 시작됐던 노인들은 친구가 되었고, 이제 가족처럼 다정하다.
한인타운이 잘 발달된 지리적 환경 탓에 자신들을 “복 받은 노인들”이라고 칭하는 이들의 생활은 정부보조와 발달된 한인 커뮤니티가 어울린 환경이 점차 심화될 한인 독거노인 문제를 어떤 식으로 해결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작은 실마리를 던져주고 있다.
“현재 큰 불편없지만 앞날 걱정”
30년째 이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는 85세의 신 할머니는 50대부터 각종 한인사회 봉사활동에 앞장서왔다. 독거노인으로 생활하고 있는 현재의 삶에 대해 큰 불편을 느끼지 않고 있지만 남편에 이어 암으로 지난해 세상을 먼저 떠난 딸 생각에 항상 가슴이 아프다. 신 할머니는 낡았지만 정든 이 집에서 아마 세상을 떠날 것 같다고 웃으며 말한다. 세월의 흔적이 남은 방과 마루에는 가족들과의 지난 세월이 수많은 액자 속에 빼곡하다. 80대가 많은 이곳 노인들에게 죽음은 늘 함께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노년생활의 종착이며 일상과 같은 소재일 뿐이다. 오히려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치매나 암 같은 불치병과 함께 찾아들 나락 같은 세월이다.
“오늘 아침에는 만약에 응급실에 실려 가면 산소호흡기 같은 생명 연장조치 없이 보내달라는 부탁을 하러 소셜 서비스를 찾아갔습니다.”
신 할머니는 비용걱정은 안해도 되니 걱정 말라며 할머니의 유별난 민원에 대해 친절하게 답해준 공무원에게 왜 그냥 죽고 싶은지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며 미소 지었다.
<박세용 기자·3면으로 계속>
“자주 안오는 자녀들에 섭섭함도”
약간의 치매끼가 있는 전 할머니. 잠시간 또렷하게 자신이 이민 온 이유와 멀리 사는 자식들 이야기를 재밌게 설명하더니 밤마다 이상한 사람이 숨어들어 화장실에 자고 다음날 나간다고 장황한 설명을 시작했다. 전 할머니를 돌보는 간병인 A씨는 1주일에 서너차례 할머니를 돌본다. 정부의 요청으로 찾아야 할 독거노인을 지정받고 돌보는 일이 계속되는 일을 2년여 간 해오고 있다. 육체적으로 힘들지는 않지만 말이 많으신 어르신들이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다고 말했다.
전 할머니는 가족이 잘 찾아오지 않아 쓸쓸하고 섭섭하지만 이곳 생활이 너무도 편안하다고 말했다. 병이 깊어지면 아파트에서 나가 요양원으로 실려 가야 하겠지만 내일이라도 찾아올 수 있는 현실을 먼 미래처럼 에둘러 생각하는 낙관은 독거노인들이 오래전부터 달관한 인생의 지혜다.
“고독하지만 희망 버리지 않아”
메릴랜드 교외지역의 한 아파트. 아침잠이 없는 김 할아버지(71)의 하루는 새벽부터 시작된다. TV를 켜고 여기저기 채널을 돌린다. 한국비디오 가게가 사라진 뒤로는 한국방송을 보기가 힘들다. 인터넷을 제대로 배우고 싶지만 컴퓨터는 아직도 다루기 쉽지 않다고 말한다. 뉴욕에 있는 자식과는 수년째 교류가 없다. 델리가게에서 종업원으로 일했던 김 할아버지는 얼마 전 해고된 상태. 일자리를 여기저기 수소문 해놓았지만 좋은 소식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다. 월세가 한달정도 밀렸지만 어떻게 해결 될 것이라고 믿는다. 담배를 피워온 것이 후회되지만 건강은 아직 문제없다. 하루에 다섯 개피 정도를 피지만 담배를 필 때면 15년 전 헤어진 아내가 생각난다. 김 할아버지는 이민 온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한국에 살고 있었다면 최소한 자식과 말이 안 통해 멀어졌을 일은 없었지 싶다. 경기가 좋았던 한창때 정부혜택, 연금 등 노후대책을 미리 준비하지 못한 것이 후회되지만 김 할아버지는 아직 희망이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나 자신을 독거노인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70이면 아직 한창 아닙니까?”라고 김 할아버지는 쾌활하게 말했다. 혼자 살겠다고 이미 오래전 결심한 김 할아버지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정부의 도움 없이 당당히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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