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부터 20여년간 쭉 서울 한복판에 살았다. 어디로든 연결되는 대중교통과 사계절 아름다운 남산이 있었던 것을 빼고는 특별히 동네 자랑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20년이면 꽤 정이 들 법도 한데, 한국에 돌아가도 다시 그 동네를 찾고 싶지도 않다. 무엇보다 여전히 치솟고 있다는 그 지역의 집값을 감당할 수 없을 거라는 확신 때문이다.
결혼 무렵, 나는 서울 강북에 남편은 경기도 수원에 근무하고 있었다. 어느 한 지역으로 치우친 곳에 터를 잡을 수 없었던 우리는 용산역 근처의 집을 구하게 됐다. 복도, 엘리베이터 등 공동 사용 공간을 뺀 우리 집(사실은 방 하나) 실평수는 9평. 그 안에 화장실, 부엌, 거실 겸 방이 다 들어가 있다. 옷장, 책상 말고 다른 가구도 없었지만 가운데 남편과 둘이 이불을 깔고 누우면 거의 방이 꽉 차는, 하늘도 안 보이게 살짝 열리는 창문이 전부인 집이었다. 집이 없어 민달팽이라고 하던가, 요즘엔 이보다 훨씬 열악한 곳에 사는 청년들도 많지만 당시 나와 남편이 모두 몇 년씩 직장생활을 한 상태였음에도 그 정도 집밖에 구할 수 없었다. 사실 그 집에 살기 위해 우리는 4000만원을 보증금으로 내고 매달 관리비를 포함해 약 80만원의 월세를 꼬박꼬박 내야 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은 분명 그보다 더 올랐을 것이다.
그래서인가 가끔 이 집에서 뒹굴다 보면 이게 꿈인가 싶을 정도로 너무 좋다. 누가 들으면 엄청 좋은 집에 사나 보다 하겠지만 방 한 개짜리 주로 대학생들이 거주하는 작은 아파트이다. 대신 방에는 침대, 옷장, 책상이 다 들어가고, 거실은 친구를 열명쯤 초대해 파티를 해도 그럭저럭 커버될 만큼의 공간이 나온다. 비용도 한국에 비하면 훨씬 괜찮다.
한국에서도 딱 이만큼만 누리며 살 수 없을까? 직장이 있는 서울을 고수하려면 다시 작은 공간에 나를 쑤셔 넣거나, 조금 여유 있는 집을 구하는 대신 언제 다 갚을지 알 수 없는 빚을 깔고 앉아야 할 것이다. 생각해보니 남한 전체 면적을 다 해봤자 캘리포니아의 4분의 1정도 밖에 안 되는데, 골고루 흩어져 사는 것이 정말 그렇게 어려운 걸까? 아, 정치하는 분들께 간청하고 싶다. 전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국토 균형 발전이 시급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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