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3세 시대를 맞이했다. 삼성의 공식 승계자가 누구인가는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에 누가 임명되느냐, 호암상 시상식에서 누가 시상하느냐가 상징한다. 삼성은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을 이 두 재단 이사장에 임명하고 엊그제 열린 호암상 시상식에도 이 부회장이 참석해 삼성에 ‘이재용 시대’가 열렸음을 공식적으로 알렸다.
삼성재벌의 경영철학은 무엇인가. 어떻게 2세인 이건희 회장이 아버지가 건설한 경제대국을 수성할 수 있었는가. 삼성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한사람의 능력(그룹 회장 등)에는 한계가 있지만 시스템의 능력은 무한하다는 것을 깨달은 기업인이다. 그는 이를 위해 기업이 어떤 위임경영체제를 갖추느냐에 삼성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판단했다.
일을 참모에게 맡기는 위임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리더가 사람을 보는 눈을 가져야하고 적재적소에 사람을 등용할 줄 알아야 한다. ‘의인물용, 용인물의(疑人勿用, 用人勿疑)’ - 믿지 못할 사람은 쓰지 말고 한번 쓰기로 결정했으면 믿고 맡겨라라는 뜻으로 이병철 회장이 가장 강조한 인사 철학이다. 그는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재발탁임을 간파하고 인재육성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가 신입사원 채용 면접시험에는 만사를 제쳐놓고 참여했으며 관상전문가까지 동원했음은 너무나 잘 알려진 이야기다. 그는 보스턴대학 명예박사 학위수여식에서 “삼성이 인재의 보고라는 말을 들을 때 나는 가장 기쁘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2세인 이건희 회장도 아버지의 인재발탁에 의한 위임경영정책을 그대로 계승해 삼성직원들에게 한국 최고의 기업에서 근무한다는 자긍심을 심어주는데 노력했으며 이같은 그의 자세가 삼성을 무노조 기업으로 성장케 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는 유능한 사원발탁에 그치지 않고 천재양성에 전력을 기울였다. “천재 1명이 10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표어를 내걸고 천재발굴에 기업승부를 걸었으며 이 결과 뛰어난 품질의 각종제품을 생산해 ‘삼성’이라는 브랜드를 ‘코카콜라’ 못지않은 세계적인 브랜드로 올려놓았다.
이건희 회장은 항상 위기대비를 강조하는 기업혁신주의자다. “마누라와 자식 빼놓고는 모두 바꿔야 한다”는 그의 프랑크푸르트 사장단회의 선언은 너무 유명하다. 그의 일생은 ‘끊임없는 도전’으로 요약될 수 있으며 현상에 만족하는 법이 없었다. 그가 70대 중반에 쓰러져 몸져누운 것도 지나친 도전정신과 과로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1세인 이병철 회장과 2세인 이건희 회장이 지닌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시대의 흐름을 읽을 줄 알고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직관력이다. 이 능력 때문에 두 사람은 카리스마를 지닐 수 있었으며 교주에 가까운 리더십으로 위임경영 시스템을 발전 시킬 수 있었다.
이제 삼성에 3세인 이재용 시대가 막이 올랐다. 그는 카리스마를 쌓지 못한 상태에서 후계자 자리에 올랐으며 삼성을 어떻게 끌고 가겠다는 그림을 내놓은 적이 없다. 그가 어떤 경영철학을 가진 리더인지 모두가 궁금해 하고 있다. 점잖고 예의 바르며 직원들에게 매너를 강조하고 사업협상 상대를 직접 만날 정도로 세심하다. 보스가 직접 챙기는 스타일에서는 아랫사람이 주눅이 들기 쉽다. ‘이재용 시대’가 이병철, 이건희 시대 쌓아놓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더 팽창 시킬 수 있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삼성의 전통적인 위임경영 시스템이 흔들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타이거 우즈가 골프 잘 친다고 그의 아들도 잘 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뛰어난 아버지를 둔 자식은 아버지보다 더 도전적이어야 한다. 이재용 부회장에게서 그같은 파이팅 정신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삼성이 안고 있는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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