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새옷을 하나 샀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대학생인 이 동네에서 최고의 패션은 면 티셔츠에 까만 레깅스. 당분간은 옷 사는데에 돈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아침, 저녁으로 쌀쌀할 때 위에 걸칠 만한 얇은 옷이 하나 필요했다. 마침 친구를 따라 쇼핑을 갔다가 맘에 쏙 드는 놈을 하나 발견했다. 모처럼 입는 새옷에 신이 나서는 집에 오자마자 세탁기를 돌렸다.
아뿔싸. 한번도 입지 않은 나의 새옷은 세탁 후 길이가 10cm쯤 줄어 있었다. 특별히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옷감이 아니라고 생각해 드라이어까지 돌렸는데 그 과정에서 사이즈가 두단계는 줄어버린 것이다.
남편은 옷에 붙어있는 안내문을 미리 읽어보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했지만, 나는 미국에 와서 몇개월만에 변해버린 나의 생활습관 때문에 벌을 받은 거라고 지난 몇개월을 심각하게 반성하게 됐다. 이렇게 햇살이 좋은 캘리포니아에서 빨래 건조기를 사용하는 건 여러 모로 문제가 있다.
일단 세탁기보다도 훨씬 전기를 많이 잡아먹을 뿐만 아니라 옷감도 금세 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 오는 겨울을 거치며 계속 사용하다 보니 이 건조기가 빨래를 널고,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림질까지 해야 하는 수고를 한방에 해결해 준다는 걸 알게 됐다. 전기세도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1.25달러면 일주일 치의 빨래를 다 해결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제와 이렇게 말하려니 정말 부끄럽지만 한국에서 나는 나름 환경 의식이 투철한 편이었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의 코드를 늘 뽑아 놓는다든가, 아이들이 하교한 후 교실에 혼자 있을 때는 웬만큼 더워도 에어컨을 틀지 않고 ‘여름엔 더운 게 정상’이라며 미련하게 땀을 흘리기도 했다.
분리수거, 재활용, 물건 아껴서 오래 쓰기 등 환경을 보호하고 자원을 절약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이 곳에서 지내며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사라진 것이다.
지구온난화의 규제 및 방지를 위한 국제 협약, 교토의정서에 가입하지 않은 대표적인 나라 미국에 살면서, ‘나 하나라도’ 했던 생각이 ‘나 하나쯤이야’ 로 바뀐 것이다. 그러니 벌을 받은 것이 맞다. 작아진 옷을 떠올리며, 오늘은 햇살 아래 빨래를 말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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