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謝過)의 한자를 보면 자신의 잘못(過)를 빈다(謝)는 뜻이다.
나는 가끔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우스갯소리로 사과할 때는 사과를 줘야 한다고 가르쳐 준다. 사과를 주면서 사과를 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실제로 우리 생활에서 진정한 사과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를 하는 순간 자신의 체면을 잃을까 두려움이 밀려오기 때문일 것이다. 살면서 감사하다는 얘기를 미안하다는 얘기보다 더 많이 하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안함을 제때에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큰 상처를 주거나 앙금을 남기기도 한다. 그것을 가장 잘 드러내는 예가 바로 일본과 우리 나라의 관계일 것이다.
체면이 무척 중요한 일본인들에게 사과를 한다는 것은 자신의 혹은 자신의 가족과 나라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체면 차리기 위해 역사 사실을 왜곡하고 변형시킴으로 일본 정부는 일본인에게 오물을 뿌리는 격이 되었다. 우리는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자주 독일과 일본을 비교하게 되는데 체면보다 책임이 더 중요한 독일인들에게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것이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독일은 이로써 주변 국가의 용서도 받으면서 실리도 챙기고 체면도 차렸다. 사과를 하기 어려운 또 한 가지 이유는 자신이 상대방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해서이다. 우리 나라의 수뇌부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잘못했다’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아직도 상하관계가 분명한 우리 나라에서는 사과를 하는 순간 자신의 지위가 다른 사람보다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굳이 나라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가족 간에도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잘 하지 않으면서도 아이들에게 잘못은 인정하라고 강요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그냥 넘어가고 지위가 낮은 사람들만 사과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잘못은 아이들이 저지르는 것보다 어른들이 생산하는 것이 더욱 많을 것 같은데도 말이다.
사실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순간 자신의 마음속을 쿡쿡 찌르던 양심의 바늘이 없어진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우리는 누구나 양심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잘못한 일에 대해 곱씹고 생각하게 되어 마음속 피로로 남게 된다. 또한 그것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합리화해 버리거나 같은 일을 반복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 자리에서 사과를 하는 것이야 말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기본 요소인 것이다. 한국에서 자라고 중국에서 오랜 생활을 한 나에게도 사과는 아직도 쉽지 않다.
특히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그러나 가족들 간이나 친구 사이에서조차 ‘그냥 알아 주겠지’ 로 넘어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아침에 큰 물건을 떨어뜨린 윗집 사람도 바람에 문을 “쾅”하고 닫은 옆집 사람도 음악을 크게 틀어 놓은 아랫집 사람과 깜빡 하고 쓰레기통을 내 놓지 않은 나도 우리 모두 지금 당장 말해야 한다.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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