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대 위의 둥그런 등은 전구가 아직 켜지지 않은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스크 안에서 내 호흡은 들이쉬고 내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길 세번쯤이었나, 눈을 떴을 때는 그 커다란 둥근 등 대신 하얗고 너른 천장의 형광등들이 눈에 들어왔다.
흔해빠진 담낭제거 수술로 한 시간만에 나는 쓸개 빠진 여자가 되었다. 그런데 그 쓸개를 통째로 잃은데 대한 실감은 전혀 없이 나는 다만 죽음이란 것이 매우 가까이 왔었다는 느낌을 계속 되씹고 있었다.
수술 전 수술이 잘못될 수 있는 확률이 1%미만이니 걱정말라는 의사의 말에도 1%의 잘못에는 염두도 두지 않았을 뿐더러 겁도 없이 농담을 할 정도였는데, 수술실, 그 수술대 위에서 들이쉬고 내쉰 세번쯤의 호흡동안 죽음이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예고도 없이 불현듯 찾아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주 짧은 순간의 그 생각이 깊은 잠의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돌아왔을 때, 시간이 그 절벽을 건너 뛰어 다시금 연결된 듯이 죽음이란 단어를 지금까지 붙들고 있다.
아들한테도 남편한테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어떤 특별한 예식도 없이, 먹다 남은 그릇들도 싱크대에 그대로이고, 빨래도 널린채이고, 읽던 책 갈피도 펼쳐있고, 그리던 그림도 이젤에 얹혀있는 채 아직 끝나지 않았고, 침대에 이불도 엉망으로 뒤엉켜 있고, 입던 옷도 옷걸이에 걸려있고, 그러니까 내가 이 세상에서 물 풍뎅이 허우적대듯 남기고 있던 잔 물결같은 흔적이란걸 고스란히 그대로 놓아둔 채로 이것이 마지막 숨이 될 수도 있다는 대책없이 난감한 공포, 수술대 위 둥근 등 아래에서 세번쯤의 호흡 동안의 그 공포가 지금 그 무엇보다 나를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삶이란 일생을 바쳐 매진할수 있는 그 무언가로 채워져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저 누구나 다 하는 것들은 삶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들이라 여겼었다. 그래서 내 인생의 한 부분, 십 수년을 죽어있는 삶을 산다고 고통과 자책과 한숨의 나날들을 보냈었다.
내게 어디론가 무조건 떠나는 것을 좋아하는 버릇이 생긴 것은 아마 일상을 온전히 일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가치를 열등한 것으로 폄하하고 그 안에 갇히길 두려워한 때문이 아닐까싶다. 일상이 온전히 그대로 내 삶이 될수도 있다는 것을 저 무의식 아래 이미 인지하고 있었기에 그래서 더욱 그 진실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럭저럭 산다는게 무기력하고 한심하고 무가치하다 여기며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언제나 속으로 비웃고 있었다. 그런데 그럭저럭이란게 우리의 삶에 쓸수 있는 표현이기나 한걸까. 그럭저럭이란건 그저 자기의 일상에 불만스러운 자들의 자기 비하일뿐 그 어떤 삶이든 그럭저럭 살게 되어있지가 않은 것이다.
햇볕에 바삭바삭 마른 빨래에 코를 대고 신선한 바람 내음을 맡을수 있다면, 화초에 물을 주면서 노오랗게 죽어가는 이파리에 숙연해지고 여리디 여린 투명한 새 잎새의 경이로움에 감탄하고, 구수한 밥냄새에 누군가의 지친 얼굴이 작은 행복의 미소로 바뀌는 상상을 하고 , 반들반들한 마루와 탁자, 세면대에 흐뭇해할 수있고, 작품을 하듯 온통 몰입하여 터진 셔츠를 꿰매고 떨어진 단추를 달며, 동네 한바퀴의 산책에 여유로와질 수있다면 그저 평범한 일상으로 채워진 삶이라도 좋은 것.
이 모든 것들이 내가 허우적대며 만들어내는 흔적이라면 그리고 그 허우적거림을 멈추었을 때 순식간에 사라질 흔적이라 할지라도 나는 기꺼이 그 삶을 내 삶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2주간의 회복 뒤 가게에 나가니 사람들이 괜찮으냐, 어떠냐 무척들 반가워한다. 그렇구나! 허우적거림으로 사람들 마음에 흔적을 남기겠구나. 우린 서로 서로의 가슴에 흔적을 새김으로써 삶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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