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쟁 65주년 기획 - 올해‘퍼플하트 훈장’받은 참전용사
메릴랜드 볼티모어 카운티의 자신의 농장에서 찰스 엘더씨 부부가 퍼플 하트 훈장증을 보여주고 있다.
MD 찰스 엘더 씨, 참전후 2년여 포로생활
휴전으로 석방...부상-정신적 후유증 고생
“그후 한국에 가본적 없고 가고 싶지도 않아”
처참한 전장보다 어쩌면 더욱 가혹했을 2년여의 포로생활을 견뎌낸 찰스 엘더 씨에게 한국전쟁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볼티모어 카운티 북쪽 요크시 인근에 위치한 농장을 찾았다.
그의 농장이 자리잡은 엘더 로드는 그의 생환을 기념해 카운티가 그의 이름을 따 명명했다. 아버지 대부터 이어온 농장은 학창시절과 한국전쟁 기간 외에는 떠나본 적이 없다. 지금도 양계장, 과수원 등을 가꾸는 일을 살피며 여유롭지만 바쁜 삶을 살고 있는 찰스 엘더씨 부부.
1927년 7월27일에 태어나 올해 87세라는 엘더씨는 자신의 생일이 한국전쟁 휴전일과 같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휴전으로 수용소에서 풀려나 두번째 인생을 살게 됐으니 엘더씨는 7월27일에 두번 태어난 셈이다.
“1949년 자원입대 후 훈련을 거쳐 1951년 한국전에 투입됐습니다. 휴전협상과 함께 한창 치열한 고지전이 펼쳐지고 있던 38선 인근 허트 브레이크 릿지에 배치 받았다가 억세게 운이 나쁘게도 북한군에 생포됐습니다.”
1951년 당시 휴전협상을 유리하게 진행하기 위해 유엔군과 북한, 중공군은 38선 인근에서 한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려는 치열한 전투를 진행했다. 허트 브레이크 릿지는 포크찹 고지 등과 함께 한국전쟁사상 가장 치열한 고지전이 진행되던 전장이었다. 엘더 상병은 진지 인근을 정탐중에 아군이 발사한 포격에 둔부에 큰 상처를 입고 곧바로 북한군에게 생포됐다.
엘더씨는 소달구지에 실려 38선 인근부터 두만강 근처에 위치한 포로수용소까지 죽음보다 고달픈 행진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함께 사로잡힌 10여명의 전우들은 모두 목숨을 잃었다. 부상당한 곳의 상처는 썩어가며 구더기가 들끓었고 미군 포로들에 대한 북한군들의 멸시와 모욕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포로수용소는 겨울이 되면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얼음지옥과 같았습니다. 낮이면 땔감을 찾는 노동에 동원됐고 중공군의 사상개조 프로그램과 갖가지 체벌, 배고픔에 수차례 죽음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휴전으로 미군에 인도된 엘더 상병은 곧 제대해 고향인 메릴랜드로 돌아왔다. 수년간 악몽에 시달리는 등 후유증을 겪었지만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당시에는 시간만이 약이라고 생각했다.
1964년 결혼한 아내 베티 엘더씨는 그런 그에게 힘과 의지가 되어준 인생의 참된 동반자였다. 나이가 들며 부상을 당했던 둔부의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해진 남편에게 아내는 지금도 큰 힘이 되어준다.
“남편은 한국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10여년전부터 남편이 나가기 시작했던 한국전쟁포로협회 모임에 참석해서야 당시의 상황과 고초를 알게 됐습니다.”
같은 아픔을 공유한 협회 사람들은 서로의 경험을 때로는 농담처럼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 하는 것으로 상처를 치유해왔다. 회원들의 고령화로 더이상 모임을 가질 수 없어 지난해 공식해체된 한국전쟁포로협회는 한때 수천여명의 회원들이 모였던 대형 조직이었다.
올해 87세로 삶의 석양을 바라보고 있는 엘더 씨에게 한국전쟁은 어떤 의미일까? 한국인들의 자유를 위해 미군들이 숭고한 희생을 치뤘다는 기자의 다소 고리타분한 립 서비스에 엘더씨는 몹시나 머쓱해하며 “아쉽지만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운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포로로 잡히게 됐다”고 솔직히 말했다.
그에게 생존의지와 함께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절망을 가져다 줬던 한국전쟁. 엘더씨는 한국에 가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은 없다고 했다. 눈부신 발전은 뉴스를 통해 익히 알고 있지만 왠지 한국에 다시 갈 생각은 하고 싶지 않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엘더 씨는 1951년 당시 일본 사세보에서 배를 타고 당도했던 부산항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런 그에게 부산의 화려한 야경을 핸드폰 인터넷으로 찾아 즉석에서 보여줬다.
“이게 정말 부산입니까? 믿기지 않네요.”
엘더 씨의 얼굴에는 반갑고 기쁘면서도 회한에 어린 복잡한 표정이 순간 어렸다. 지독한 상처를 남겨준 한국의 기억을 치유하기에는 부산의 화려한 야경이 담긴 한 장의 사진은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박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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