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쉬혼 현대 박물관 The Hirshhorn Museum and Sculpture Garden
허쉬혼 미술관 전경, 중앙 분수대, 이브 클렝 전시 장면, 2010, 헨리 무어의 Stringed Figure No. 1, 1937Reproduced by permission of The Henry Moore Foundation., 쉬린 네샤의 I Am Its Secret (Women of Allah), 993. Photo: Plauto. ⒸShirin Neshat. Courtesy Gladstone Gallery, New York and Brussels(시계반대방향).
모던-컨템퍼러리 아트
두 영역 작품 고루 갖춰
‘현대미술의 전당’
고든 번쉐프트가 디자인한
미술관 건물 자체가 현대예술
워싱턴 최상급의 미술관
요즘 같이 찌는 듯한 더운 날씨에는 시원한 미술관에 들어가서 하루를 보내는 것도 현명한 피서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러면 어디를 가면 좋을까? 이제까지 소개한 내셔널 갤러리와 프리어 갤러리의 두 군데 외에도, 워싱턴 D.C.의 미술관 중에서 두 번째라고 하면 서러워할 또 하나의 최상급 미술관이 바로 허쉬혼 뮤지엄이다.
‘The Hirshhorn Museum and Sculpture Garden’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계적인 조각가들의 작품들을 보유하고 있는 조각 공원도 미술관의 일부이다.
한국말로 ‘현대 미술’은 다소 모호하지만, 영어로 모던 아트(Modern Art)와 컨템퍼러리 아트(Contemporary Art)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19세기말 사실주의 인상파 등 소위 현대 미술중 이미 고전이 된 시기를 ‘모던 아트’라고 한다면, 1960년대 이후(전후 세대)부터 현재까지 벌어지고 있는 미술의 다양한 양상은 ‘컨템퍼러리 아트’라고 한다. 허쉬혼은 이 두 영역을 고루 갖추고 있어서 현대 미술의 전당과도 같은 곳이다.
자수성가한 기업가의 기증
허쉬혼이란 미술관 명칭은 미국 기업가인 조셉 허쉬혼(1899-1981)의 이름에서 딴 것이다. 1966년에 그가 가진 미술 소장품들을 스미소니언에 기증을 했고, 이는 워싱턴 최고의 현대 미술관을 가능하게 했다.
소련의 일부였다가 독립한 라트비아에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이민을 온 허쉬혼은 열세 살의 나이에 학교를 그만두고 신문을 배달해야만 했다. 2년 후 월 스트리트에 첫 직장을 잡게 되었고, 열여섯에 증권 거래업자가 되었으며, 열여덟 살에 최초의 미술 컬렉션을 시작하게 되었다. 광산에 투자한 이후 부자 계열에 당당히 들어서게 되었지만, 그 이전에도 이미 탁월한 감각으로 적은 돈으로 최고의 수작인 미술품을 사 모으고, 미술가들을 키워주었다.
예를 들면 윌렘 드 쿠닝의 스튜디오를 하나 만들어 주는 대신에 그의 작품을 하나 받는다든지 하는 식이다. 어려운 작가들에게 도움을 주며 그로 인해 자신도 실리를 얻는 문화 엘리트 부자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건물이 하나의 현대예술
허쉬혼 미술관은 건물 자체가 하나의 현대 예술이다. 고든 번쉐프트(Gordon Bunshaft)가 디자인한 이 건물은 드럼 모양으로 되어 있고, 도넛처럼 가운데는 뚫려서 중간에 위치한 가든을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마치 뉴욕의 구겐하임 뮤지엄과 흡사한 구조인데, 그는 이 건물을 “큰 사이즈의 기능적 조각”이라고 생각하였다.
소장품 소재로 한 기념품
독특한 선물용으로 적합
그는 여러 가지 혁신적인 현대 건축을 시작한 사람으로 그의 단순한 디자인과 건축 자재 사용은 많은 현대 미술가들에게 영향을 주면서 건축을 한 단계 높은 예술로 승화시켰다. 물론 처음 이 건물이 세워진 70년대는 벙커나 개스 스테이션 같다는 비평가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을 수밖에 없었지만, 에펠탑도 반대 끝에 100년 후엔 철거하기로 하고 세워진 조형물인 걸 보면 시대에 따라 사람들의 관점과 감각이 바뀌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오로지 일부 선각자만이 미래를 내다볼 뿐이다.
이 건물을 한 바퀴 돌면서 최초의 모더니스트 건축을 감상한 후 일층 입구로 들어가면 안내 데스크를 만난다. 그곳에서 지금 특별 전시의 위치를 확인하고 움직이는 것이 좋다. 12,000 점이나 되는 소장품을 6만 스퀘어 피트의 전시장이지만 모두 전시할 수 없기 때문에 일부는 소장품 전시, 그리고 일부 전시장은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
소장품은 19세기부터 현재까지의 회화, 조각, 사진, 설치, 뉴 미디어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들이고, 특히 조각은 세계적으로도 어느 미술관에 뒤지지 않게 골고루 중요한 현대 조각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면,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이 12개의 청동 조각 버전을 주조하고 난 후 원형 점토나 석고 조각을 파기하는데, 그 중 한 버전이 여기 야외 조각 공원에 있다. 그 외에도 헨리 무어, 브랑쿠지, 칼더 등 조각이 골고루 야외에 갖추어져 있다.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대표적인 소장품으로는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조셉 알버즈, 프랜시스 베이컨, 알렉산더 칼더, 윌렘 드 쿠닝, 존 뒤비페, 알베르토 자코메티, 모리스 루이스, 이사무 노구치, 데이비드 스미스, 히로시 스기모토 등이 있다.
게다가 새로운 작품을 계속 사들이다보니, 에이 웨이 웨이, 닉 케이브, 댄 플라빈, 에바 헤스, 클래스 올덴버그, 게르하르트 리쳐, 조셉 코슈스, 캐롤 쉬니만 등 개념미술, 미니멀 아트, 라이트 아트, 환경 미술, 페미니스트 아트 등 떠오르는 신예 중진들로 골고루 미술사 교과서를 옮겨 놓은 듯 갖추게 되었다. 모든 미술가 교과서에 백남준 다음으로 두 번째로 이름을 올린 한국 작가 니키 리의 아이덴티티에 관한 사진 작품들 또한 최신에 허쉬혼 미술관이 구입한 작품이다.
성지 순례하듯 원형관람
층별로 이 작품들을 보기 위해서는 두 번의 원주를 돌아야 한다. 메인 전시장이 각 층마다 시작되고, 원주의 안쪽에 가면 한쪽 벽면과 플랙시 글라스 안에 조각 작품이 중간 중간 있다. 센터의 뚫린 공간은 창문을 통해 하늘과 분수가 있는 정원이 내려다보인다. 그야말로 번잡한 내셔널 몰 안에서 작품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조용한 성지와 같은 곳이다.
원주모양의 전시장을 따라 돌면 항상 출발한 곳으로 돌아오게 된다. 모든 성지 순례지에서 성골함 등을 원형으로 순례하듯이 이 작품들을 순례하는 기분이다. 모든 종교의 성지 순례에서 원형 도보는 기본 제식이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 인생이 원점으로 모두 돌아간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는 것과도 같다.
최근 주목을 받은 큰 전시로는, 창조뿐 아니라 파괴도 예술의 한 방편임을 보여주는 “Damage Control: Art and Destruction Since 1950,” 중국 정부를 비난하는 개념 미술로 인해 논란의 핵심에 서있는 “Ai Weiwei: According to What,” 20세기 모던 아트를 블루 모노크롬으로 완성시킨 프랑스 대가 “Yves Klein: With the Void, Full Powers” 등이 있었고, 새로운 것을 계속해서 대중에게 소개하는 의미에서 “Black Box”라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디오 아트 작가들을 모아서 기획하였다.
초현실주의 작가들 전시회
지금 하고 있는 전시 중 주목할 것은 “Marvelous Objects: Surrealist Sculpture from Paris to New York”이 있다. 초현실주의라는 20세기 중요한 미술 사조를 다룬 작가들을 모아서 보여주는 전시인데, 이제까지 초현실주의는 회화나 드로잉 또는 필름 위주로 다루어진 반면, 이번 전시는 3차원 즉 조각이나 설치 중심의 전시이다.
1920년대부터 50년대까지 프랑스, 스페인, 벨기에, 스위스, 독일, 영국, 미국 등 모두 20명의 작가들의 10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초현실주의의 3차원 조각은 두 가지 접근으로 요약되는데, 한 가지는 생물학적 형상의 유기적 추상 작품들이고, 또 한 가지는, 기존의 공산품 레디 메이디를 조합해서 만드는 작품들이다.
전자로는 쟝 아르프, 헨리 무어, 호앙 미로, 알렉산더 칼더, 이사무 노구치 등이 있고, 후자는 마르셀 뒤샹의 작품이 있다. 특히 이 전시는 같은 관점과 기법의 미술 양식을 공유함으로써, 유럽과 미국이 어떻게 문화적으로 연관되는지를 연구하는 것이 주 목적인 전시이다.
뮤지엄 샵의 기념품들
2층에 가면 9월에 마칠 아주 특별한 전시를 놓치지 않기를 권한다. 이란 태생의 미국 이민자인 쉬린 네샤의 사진과 비디오 작품 전시인 “Shirin Neshat: Facing History”는 이란에서 여성으로 그리고 예술가로 자란다는 것, 특히 억압받는 중동 사회의 현실을 예술적으로 시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미술관은 작가가 대중과 만나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중요한 이벤트를 여러 번 기획했는데, 그 중 아직 한번이 더 남아있다. 네샤와 “The Lonely War: One Woman’s Account of the Struggle for Modern Iran”의 저자인 나질라 파티가 토론회(9월 17일 6시30분)를 통해서 여성의 역할과 정체성에 대해서 논의할 예정이다.
작년에 새로 부임한 허쉬혼의 수장인 멜리사 추는 뉴욕 아시아 소사이어티 디렉터였고, 중국 현대 미술사의 전문가이기도 하다. 중국계 혼혈인 아시아 미술관 전문가가 워싱턴 최고의 현대 미술관 디렉터로 오게 된 것은 미술관의 미래 방향을 예시해 준다. 아시아 현대 미술 그 가운데 한국 현대 미술도 크게 부상하고 있기 때문에 한인 미술가들에게 고무적이다.
이 미술관에는 카페테리아는 없지만, 뮤지엄 샵이 있다.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소장품을 소재로 한 기념품은 독특한 선물용으로 적합하다.
지하에 이 미술관에 맞게 제작된 페미니스트 작가 바바라 크루거의 강렬한 문자 작품을 마지막으로 감상한 후, 야외 조각 공원에서 거장들의 조각 작품을 무료로 감상하기를 권한다. 로댕의 ‘칼레의 시민’을 한 바퀴 돌면서, 미술관 안에서 돌던 원형 도보가 야외에서도 상응되며 허쉬혼 미술관 순례가 마무리된다.
글: 이정실
WUV 교수
미술 평론가, 독립 큐레이터
GWU, UMD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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