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근처는 즐비한 상점들과 옹기종기 모여있는 학생들로 늘 시끄럽고 북적거리지만 캠퍼스에서 2마일 정도 떨어진 우리 동네는 버클리(Berkeley)의 또 다른 모습을 가진 곳이다.
생필품을 사기 위해 한참을 걸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개성있게 생긴 집들을 구경하며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름 모를 꽃과 풀들을 보고 있으면 눈이 즐겁고, 잘 가꿔진 집 앞 정원을 지날 때면 정성스레 가꾼 주인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보고, 햇빛을 쬐고 있는 고양이를 만나면 바쁘게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하루를 천천히 음미해보곤 한다.
재치와 여유는 나뭇잎 사이로 드러난 햇살처럼 은은하게 곳곳에 퍼져 있다. 인적이 드문 길을 걸어도 동네 주민들의 따뜻한 정이 느껴지는 이유는 길거리에 주인 없이 나열된 물건 속에 담겨져 있다.
오래된 3단 갈색 선반에 책을 꽂아 두고 그 위에 펼쳐놓은 빨간 우산은 비 올 때 책이 젖을까 하는 주인의 배려, 오래된 물건을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 작은 것도 이웃과 나누려는 고운 마음씨를 익살스럽게 표현했다.
집 앞 나무에 걸려 있는 분필과 펜을 들고 누구나 바닥에 그림을 그릴 수 있고 그 옆에 놓여진 천조각에는 얼굴도 모르는 이웃에게 전하는 안부와 축복의 말로 가득하다.
온 가족이 한꺼번에 신발정리를 했는지 나무 그늘 아래 사이즈별로 가지런히 놓여진 신발들의 모습은 헌 신발을 정리한 후 후련한 표정을 지었을 옛 주인과 필요했던 누군가가 발견했을 때의 함박웃음을 상상해보게끔 한다.
가구를 새것처럼 깨끗히 닦아 놓거나, 긴 전기코드를 돌돌 말아 테이프로 붙여서 편하게 가져갈 수 있도록 한 섬세함은 내놓은 사람과 가져가는 사람도 기분 좋게 만든다.
나 역시 내게 필요없는 물건이여도 다른 사람을 위해 집 앞에 몇번이고 내놓은 적이 있다. 집에 돌아오는 길 내가 놓아둔 물건이 사라져 있는 걸 발견하면 예쁘게 쓰길 바라는 마음이 전달되기라도 했듯이 고맙다는 대답이 허공에서 들려오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기분이다.
나에게는 버려진 물건이여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쓸모있다는 사실은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며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것과 같다. 길을 걸으며 무수히 많은 집들을 지나면서 담장 너머로 내 물건을 쓰고 있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동네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끔 한다. 그렇게 난 보이는 것을 넘어서 보이지 않는 곳까지 소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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