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데이비스 생활 중에 그나마 빠질 수 없는 즐거움이 있다면 세계 곳곳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영어 회화 수업에 나가면 남미 각국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심지어 아프리카 수단에서 온 사람들도 만날 수 있다. 자원봉사자인 선생님들도 대체로 상당히 시각이 열려 있고, 다른 문화에 대해 관대하다. 그 중 특히 내가 아주 좋아하는 수업이 하나 있는데 음악, 스포츠에서부터 의료 시스템, 대중 교통까지 폭넓은 주제를 놓고 세계 여러 나라의 사례를 나눈다. 그런데 선생님이 제시하는 수많은 자료 속에서 한번도 Korea가 다루어진 적이 없다. 처음엔 ‘다른 나라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배우면 좋지’ 했는데 거의 10개월이 다 되어가는 동안 단 한번도 한국이 언급되지 않으니 마음이 썩 좋지 않다.
여기가 무슨 백인들만 거주하는 특별한 동네가 아닌데다 사실 이 곳에 한국인이 정말 많이 거주하기 때문이다. 어떤 영어 수업에 가더라도 최소 서너 명 이상의 한국인이 있고 많은 경우엔 전체의 삼분의 일 이상을 차지하기도 한다. 한국 사람들은 그렇게 미국을 좋아하는데, 우리는 이렇게 존재감 없게 다루어지다니. 그러고 보니 동네 도서관에도 한국에 대한 책은 거의 전무하다. 언젠가 Korea로 도서 목록을 검색해본 적이 있는데 한국 전쟁과 북한에 대한 책만 몇 권 있는 것을 확인했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속한 세상의 전부였던 한국, 아픔도 많지만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역사와 문화들이 중국과 비슷한, 혹은 일본에 지배되었던 수준 정도로 치부되는 현실이 유쾌하지 않다. 가끔 국내 뉴스를 접하면 차라리 알리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일들도 많지만, 그래도 나 역시 한국인이라고, 다른 나라 친구들 앞에서는 이런 저런 좋은 이야기들만 해 주고 싶은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더불어 한국은 그냥 한국이지 중국 문화권에 속하는 저 끄트머리 작은 나라가 아니라고 꼭 그렇게 확인을 시켜주고 싶으니 이건 무슨 심리인가 모르겠다. 내가 너무 유치하고 세계시민 마인드가 없는 걸까. 어쩌겠는가. 큰 나라들에 속한 소수 민족들이 왜 끊임없이 독립을 하고 싶어 하는지 진심으로 이해가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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