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우리는 이미 꽤 많은 것이 정해져 있었다. 내 이름조차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져 있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성별이 정해지고 가족이 생기고 누군가의 딸이 되었다. 자연스러운 순리이기에 불만없이 오히려 감사하며 자라왔다. 하지만, 지나친 책임감에 짓눌렸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6년간의 기초 교육과정을 밟고 또다시 6년의 공부와 4년의 대학생활을 마치는 동안 나는 누나, 딸, 장녀라는 이름에서 회장, 선배, 팀장이라는 다양한 호칭으로 불리며 나의 역할과 책임을 확장해갔다. 내가 걸어온 시간은 그 시기를 대변해 주는 청춘과 경험들이 응축되어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는 자산이 되었다. 과거의 나를 돌아보고 미래의 나를 향해 또 한번 힘을 내며 현재에 충실히 임한다.
약 70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있는 학교에서 공부와 일에 충실하여 Dean’s Honors List에 이름을 올리고 졸업을 하는 순간, 하늘 높이 던져 버리고 싶은 것은 비단 학사모뿐만이 아니었으리라! 그렇게 쉼 없이 달려왔으나 생각지도 않았던 생소한 단어가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내 인생에 아름다운 순백색으로 수를 놓은 듯한 그 이름, 백수! 어디선가 툭 떨어진 듯한 이 단어가 무척이나 낯설다. 하루 아침에 소속할 곳이 사라졌고 할 일이 모호해지는 텅 빈 시기를 맞았다. 한가할 것 같지만 나는 또 다른 주제로 공부하느라 여념이 없다.
정해진 시간도 없고 숙제도 없고 심지어는 가르쳐주는 이도 없는 이 공부의 주제는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생각했던 나와 실제의 나, 그 차이를 알아가는 공부이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내 모습과 현실과의 격차를 채워 나가고 있다. 내 온몸을 휘감고 있던 사회적인 기대를 한꺼풀씩 벗겨내니 잔해가 하나 둘씩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그 아래, 투명한 나를 마주한다.
낯선 곳을 여행할 때 지도가 필요하듯, 내 삶을 창조해갈 내 성향에 대해 지금 공부하는 건 인생탐험에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기에 나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운명은 수많은 선택들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선택들은 개개인의 성향에 의해 좌우된다. 나의 성향과 장점을 파악하고 온전히 나를 위한, 나를 공부하는, 내가 선택한 이 시기가 더없이 값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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