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없을 때 버스는 나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였다. 하지만 버스는 단순히 편리를 제공하는 수단 그 이상이었다. 제 시간에 오지 않아 하염없이 기다릴 때도 있지만 이제는 그 기다림도 제법 익숙하게 다룰 줄 안다. 거대한 몸을 느릿느릿 움직이며 한 곳마다 정차해 수많은 사람을 태우고 내리는 버스를 보면 그와 관련된 추억들이 필름처럼 지나간다. 옷 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소소한 만남들이 있고 이별이 있는 버스는 지나간 시간들을 상기키는 곳이다.
처음 미국에 왔을 당시 나는 매주 토요일마다 버스정류장에 나갔다. 한적한 시골 정류장에서 한 시간에 한 대씩 오는 버스를 기다렸다. 그 시간이 지루했는지 같이 기다리던 사람들이 한 두마디씩 말을 건낸다. 친구도 없고 영어도 서툴 때였지만 버스를 기다리는 그 순간엔 말을 나눌 사람이 있다는게 어찌나 반갑던지 할 말이 막힘없이 나오곤 했다.
낯선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말을 시작할 수 있는 버스 정류장은 나만의 회화교실이였다.
영어를 배울 때 가장 걱정하는 것은 실수를 하면 어쩌지하는 두려움이다. 버스가 오면 떠날 사람이니 실수를 해도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었다. 버스를 볼 때면 마치 이야기 꾸러미가 지나가는 듯 사람들과 한마디라도 더 할려고 의자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던 그 순간이 떠오르곤 한다. 가까운 곳으로 이동하는 동네버스도 좋지만 9시간 이상씩 걸리는 장거리 버스도 그 매력이 있다.
최신식 느낌이 나는 비행기에 비해 버스는 좀 더 인간적인 냄새가 난다. 버스가 떠나려는데 짐도 없는 자전거 탄 여자가 버스를 세운다. 차장이 내려오고 그 뒤에 어머니가 달려온다. 어머니가 차장에게 설명하는 동안 통통한 아들이 뛰어오고 마침내 아버지도 도착했다.
땀이 물 흐르듯 떨어지는 아들은 버스를 타기 전 이마를 내어 아버지의 손을 올린다. 자전거를 탄 여자는 홀연히 사라지고 버스를 탄 아들에게 어머니와 아버지는 연신 손을 흔든다.
나 역시 누군가의 곁을 떠나고 보내 본 적이 있기에 그 자리에 서있는 심정을 안다. 그렇게 버스는 그리운 마음을 태우고 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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