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일 학년 때 취침시간을 어기고 기숙사에서 몰래 이불을 뒤집어쓰고 보았던 윌 스미스 주연의 영화 ‘행복을 찾아서’는 지금까지도 내 뇌리에 깊이 박혀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행복을 대하는 내 자세는 그 영화를 계기로 좀 더 확실해졌던 것 같다.
아리스토 텔레스가 내린 결론, 즉 “인간의 궁극적인 존재 이유는 행복하기 위해서이다"라는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내가 지향하는 방법론은 이상하리 만큼 단순하다. 많은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물질적, 정신적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그 무엇보다 위대하다. 그렇기에 돈이 많으면 행복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돈이 많다고 해서 꼭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많은 사례를 통해 검증됐다. 결국 돈과 행복은 완벽한 상관관계를 가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저런 변수들이 참 많다. 그래서 나는 그냥 행복에 그 어떤 조건도 붙이지 않기로 했다. 이른바 ‘무조건적 행복론’. 나에게 있어서 행복은 최상위 개념이다. 물질적, 정신적 조건들은 플러스가 될 수 있지만 그것들이 충족되지 않았다 해도 나는 행복을 의심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행복을 잘못 이해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행복에 있어서 만큼은 그 어떤 해석도 틀릴 수 없다는 것이 내 주장이다. 다른 생각이 만들어낸 다른 해석이 있을 뿐이다. 생각해보면 세상에서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행복이다. 돈, 명예, 권력 등 모든 것은 내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여러 과정을 통해 물리적으로 소유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행복은, 내가 이 순간 행복하다 생각하면 1초 만에 내 것이 된다.
살다 보면 마음이 찢어지게 슬플 일도 있고 날아갈 만큼 기분 좋은 일도 있다. 많은 사람들은 행복했다가도 경우에 따라서 불행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하지 않은, 결국 씻겨 내려갈 ‘감정’일 뿐이다. 당신은 천문학적인 확률을 뚫고 이 세상에 태어났고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수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 단지 그것만으로 행복할 수는 없는 것인가?
행복이 위대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전염성 때문이다. 아무리 가진 것이 없는 자라도 남에게 베풀 수 있는 것이 바로 행복이다. 내가 행복함으로써 누군가가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보라. 그 얼마나 뜻깊은 책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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