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은 유난히 덥게 지나고 있다. 그 이유가 단순한 체감온도 때문만은 아니다. 휘뚜루마뚜루 시간이 가는 여가에도 여성의 창에 쓸 글 생각에 마음이 바빴다. 원고 마감 날이 다가오는 동안 괜한 욕심을 부렸다는 후회도 했다. 미국에 살게 된 이후 남들 눈치를 적게 보는 생활방식이 좋았으나 이번에는 의욕만 앞서서 저지른 선대답 후수습의 과정에 스스로 통박을 주어도 시원찮았다. 이쯤 되면 이 긍정적 의욕은 내 생의 만성병이 되고 만다.
그러던 중 문득 30년 전 겨울방학의 기억이 떠올랐다. 고3을 코앞에 두고도 연애소설이나 뒤적뒤적 읽으며 태평인 내게 넌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어머니가 물었다. 난 별 고민없이 “이것이 결국은 옳지 않아요 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사춘기 중2병의 중간을 용감하게 관통하고 있었던 나이니 그런 무리한 대답이 나왔다. 고백하건대 형이상학적인 언어유희였지 그 의미를 알 리가 없었다. 어머니는 아무런 말없이 물끄러미 날 바라보았다.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생각이 많은 눈빛이었다고 주관적인 묘사를 할 밖에. 이틀쯤 지난 후 어머니는 “난 네가 선생님이나 공무원이나 소설가 같은 구체적인 무언가 직업인이 되고 싶다고 말할 줄 알았다. 그런데 너의 꿈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휠씬 크더구나. 네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려무나” 하셨다. 어머니는 그때 그게 얼마나 큰 꿈이고 도달하기 어려운 꿈인지를 내게 설명하려 할 수 없었으리라.
세월이 많이 지난 요즘에서야 그 대화가 떠오른 것은 지난 수 주일 동안의 고민에서 시작된 것이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에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로 서서히 불안의 강도가 증폭되었을 때 나에게 넌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노라고 케케묵은 기억이 말을 걸어주었다. 나는 아직 하고 싶은 말을 다할 어른이 되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인지는 분간하는 어른이 되는 과정에 있음은 안다. 그렇게 난 여성의 창의 화두를 나에게 던져보는 중이다. 하고 싶은 말 그리고 할 수 있는 말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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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씨는 경제학 전공한 후 공무원기자경영컨설턴트로 일하다가 도미 후 건축인테리어, 보험, 부동산 등의 자산전문가로 일하며 실리콘밸리한국학교 교사로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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