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고향을 떠나 피난민이 된 20여명 우리 식구들은 할아버지 둘째부인의 도움으로 사직동 기와집에서 살았다. 집은 좋았으나 가난하여 밥을 먹지 못하고 매일 밀가루 음식을 먹었다. 식사는 늘 두 상으로 차렸다.
할아버지 혼자 드시는 상에는 항상 우리들이 먹지 못했던 음식이 올라가 있었다. 하얀 쌀밥, 생선, 감자, 때로는 쇠고기도 있었다. 나머지 우리들의 커다란 상에는 거의 매일 국수, 수제비, 껄끄러운 보리밥에 김치뿐이었다. 네 살이었던 나는 국수에 신물이 났다.
어느 날 아침, 나는 할아버지 상 위의 하얀 밥과 고기를 보고 뒹굴기 시작했다. “나, 국수 안 먹어. 저기 할아버지 하얀 밥 먹을래, 국수 싫어.” 하며 소리쳤다. 내 젊은 어머니는 너무도 당황해서 내 궁둥이를 꼬집었다. 나는 더 크게 소리쳤다. “국수 안 먹어, 국수 안 먹어.” 할아버지는 성큼 나를 껴안아 밥상 앞에 앉히고 마음대로 먹게 했다.
나는 배가 불러 숨이 가쁠 때까지 흰밥을 실컷 먹었다. 식구들은 쥐 죽은 듯 조용히 그 광경을 훔쳐봤고, 상을 거둔 즉시 어머니는 나를 광에 데리고 가 볼기를 때렸다. 나는 “살려줘요, 엄마가 나 때려요”하며 고함을 쳤다. 할아버지는 맨발로 뛰어나와 나를 껴안고 “이게 다 내 죄다, 다 내 탓이다” 하며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도 울었다.
그 시절 이후 10여년 나는 국수를 입에 대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음식이 김치와 국수라고 생각했다. 그런 편견은 내가 대학생이 되고 입양된 남동생이 열 살쯤 되었을 때 깨어졌다. 남동생에게 무얼 먹고 싶으냐 하면 그 애는 늘 “국수” 라고 했다. 어머니가 국수를 만들어주면 가장 기뻐했다.
“국수가 정말 그렇게 맛있니?” 하고 물으니 ‘제일 맛있다’고 했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국수와 김치를 새로운 마음으로 먹어보았다. 과히 나쁘지 않았다. 자꾸 먹으니 맛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국수에 대한 편견은 그렇게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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