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모습.
아이다호주에 있는 헤밍웨이의 집 외관.
세계적 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가 마지막 작품을 쓰고 자살하기 전까지 살았던 집이 국립사적지(NRHP) 명단에 오른다고 이 집을 소유한 비영리단체 네이처 컨저번시가 12일 밝혔다.
네이처 컨저번시 아이다호주 부소장 루 룬테는 “헤밍웨이가 쌓아온 문학적 유산을 기리는 방법을 찾고 있다”며 전속작가 프로그램을 희망하고 있으며, 헤밍웨이와 지역의 이야기를 엮기 위해 지역 도서관과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다호주 중부 휴양지 케첨에 있는 이 집은 면적 2,500스퀘어피트의 2층 건물로, 헤밍웨이가 1959년 구입해 61세의 나이에 엽총으로 자살한 1961년까지 살던 곳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헤밍웨이는 이 집에서 젊은 시절 파리에서 살 때를 회고한 ‘파리는 날마다 축제’(A Moveable Feast), 사후에 출간된 ‘위험한 여름’(The Dangerous Summer) 등의 작품을 썼다. 1954년 ‘노인과 바다’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그는 말년에 이곳에서 사냥을 하고 낚시를 하며 지냈다.
이 집은 1986년 사망한 아내 메리 헤밍웨이가 네이처 컨서번시에 기증했고, 단체는 규모가 커지기 전까지 사무실로 사용했다. 허가 받은 사람만이 방문할 수 있는 제한 구역이어서, 벽난로 옆의 부츠나 헤밍웨이가 직접 이름을 쓴 여행가방 등 일반에 거의 공개되지 않은 헤밍웨이의 개인적인 물건들과 1950년대의 양식이 그대로 남아 있다.
국립 사적지의 역사학자 폴 뤼지냥은 이 집이 “예전의 집필능력을 잃은 말년의 시절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이로써 헤밍웨이가 살았거나 중요한 시절을 보냈다는 이유로 사적지에 오른 곳은 미국 내에서 총 5곳이 됐다. 이 중 가장 방문객이 많은 곳은 헤밍웨이가 1930년대 살았던 플로리다주 키웨스트에 있는 집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