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크기의 약 오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 샌프란시스코는 미국에서 손꼽히는 관광도시다. 이 도시의 한해 관광 유동인구는 약 1,700만 명, 이곳의 거주인구는 약 80만 명이다. 여기서 아주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서울의 시청 앞 지하철역만큼이나 바쁜 속에서 한국인들의 웃음소리와 말소리만큼은 똑똑히 구분한다.
케이블카의 경적 소리, 수많은 관광버스의 소음, 그리고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여행객들의 소음 정도면 수 미터 밖의 말소리는 들리지 않아야 정상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서도 한국인들의 소곤거림도 구분해내는 신기한 일을 겪었을 때 ‘이게 웬 신공인가’ 감탄까지 할 지경이었다. 아주 가까이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면 멀리서 하는 말소리인데도 그렇다.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 바로잡자면 이건 한국 관광객들이 유난히 시끄럽게 떠들거나 호들갑스럽게 여행을 즐겨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한국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성장한 내 귀의 소리인지기관은 한국어를 듣는 데시벨(decibel)에만 유난을 떤다.
한국어의 데시벨은 그 목소리가 어떻든 별나게 생각될 정도로 잘 잡아내는데 다른 소리에는 무디다. 영어가 안 들린다는 말을 했을 때 단어를 운운하며 비웃던 지인들의 구박과 핀잔은 용감하게 접어두어도 될 듯하다. 내 귀는 모국어의 영향 아래 아주 자연스럽게 잘 자란 죄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모국어에만 친절한 귀를 가진 나는 이국에서 외국어로 가슴의 소리를 전달하는 말을 찾을 때가 있다. 섭섭하다, 아쉽다, 서운하다 같은 감정이 구체적인 단어들을 전하고 싶으니 딱한 거다.
국어사전을 찾으면 섭섭하다는 아쉬운 감정이고, 아쉽다는 섭섭한 감정이다는 식의 무책임한 언어적 풀이가 전반적이다. 그 단어를 영어로 말한다는 것은 섭섭함 일부와 아쉬움 일부, 그리고 서운함 일부를 거칠게 싸잡아 표현하는 길밖에 없다.
내 귀에 모국어만큼 들리지 않는 온갖 소리처럼 영어로 쓰는 감정표현은 아주 제한적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사전을 뒤적거리면서 오늘의 감정 ‘섭섭하다’를 찾는 걸 보면 아직 언어에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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