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곰이 남쪽으로 100걸음 가다가, 방향을 바꿔서 동쪽으로 100걸음 갔다. 그 자리에서 다시 북쪽으로 100걸음 갔더니 신기하게도 제자리에 왔다고 한다. 그 곰의 색깔은 무엇일까?
이 수수께끼의 답은 흰색이다. 곰은 북극에서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아이 셋은 모두 아빠에게 엉덩이가 큰 유전자를 물려받아서 곰같이 생겼다. 아빠까지 곰 네마리를 기르다보니, 자연스럽게 곰 장식품을 모으게 되었다.
가장 아끼는 것은 프랑스 조각가인 프랑수아 퐁퐁의 ‘백곰’모형이다. 우리 식구들은 백옥같지는 않지만 피부가 흰편이어서 북극곰 위주로 모아왔다.
그런데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사오면서 아이들이 변했다. 처음에는 갈색곰이 되더니, 종류별로 선스크린을 구비해 놓고, 별별 잔소리를 다 하는데도 점점 검어진다. 한 여름이 지나고 나니 요세미티 곰들 사이에 풀어놔도 잘 섞여 지낼 수 있을 정도로 색이 익어버렸다.
피부색으로는 캘리포니아 아이가 되었지만 아직 머리카락은 서울 아이다. 캘리포니아 걸이 되려면 앞머리를 한참 더 기르고, 긴 생머리 날리고 다녀야 한다. 낮에는 더우니 묶었다가, 밤에는 추우니 어깨라도 덮으려고 기르고 다니나?
집안에 떨어진 머리카락 청소를 하다보면 곰처럼 몸에 털이 없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 사춘기 아이들은 앞머리를 길러 눈을 반쯤 가리고 다니는데, 그것보다는 보기에 좀 낫다만, 결국 이 나라 이 세대도 전형적이라는 것이 가슴 아프다.
미국의 사회도 공부할 겸, 우리 세대와 정신적 교감도 할 겸하여 1977년 미니시리즈인 ‘뿌리(roots)’를 아이들과 같이 봤다. 아프리카에서 노예사냥을 당해 잡혀온 쿤타킨테가 자식에게 뿌리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만딩카 어로 자신은 ‘캄비 볼롱고’에서 왔다고 알려주는 장면이 있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자란 원작의 작가가 ‘볼롱고’가 강이라는 뜻이라는 것을 추적하여 자신의 고향이 캄비아 강가라는 것을 찾아냈다고 한다.
나의 아이들은 순식간에 피부색이 변하고, 곧 다른 겉모습도 변할테다. 결혼하고 자식을 낳으면 생각도 언어도 입맛도 변하리라. 쿤타킨테처럼 어려운 상황은 아니지만, 글씨가 있고 사진이 있어도 많은 것이 잊히리다.
그래도 잊지 말았으면 하는 것은 무엇일지, 시간 날 때마다 이야기해보려하는데 같이 있을 남은 시간이 너무나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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