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조그만한 Tax Office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막내 딸이 대학에 간 지 1년 반이 지난 후였다. 거의 자식일에만 미쳐 살아온 내가 막상 아이들이 떠나고 나면 슬프고 무기력할 것 같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오래된 빚을 다 갚은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아이들은 고마워하면서 그렇게 다들 집을 떠나갔다.
그날을 기다린 것처럼, 나는 그때부터 내 앞의 삶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왜? 친구들은 묻는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살아오면서 늘 마음 한구석에 자리한 단 한가지 --- 마음 제일 밑바닥을 치고 항상 올라오는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 힘들어 번 돈으로 대학원까지 그것도 모자라 미국에까지 와서 교육시키신 내 부모님이 헛고생한 것 아니라고 보여주고 싶은 간절한 소망 같은 것…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아무것도 해드린 것 없이 살아온 불효를 하늘에 계신 부모님께 조금이라도 갚고 싶은 마음…적어도 셋째딸이 부모님이 공부시킨 덕분에 이 나이에도 이렇게 직장을 잡아 일 잘 하고 있는 것을 보여 드리고 싶은 그 한마음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달리고 또 달렸다. 나이 오십둘에 맨 밑바닥에서 기고 또 기고… 죄스러운 부모님께 속죄하는 마음으로…
드디어 공부한 지식을 밑천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살아계셨더라면 제일 기뻐하실 우리 부모님…앞으로 이 사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서 제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부모님께 보여줄 수 있도록 열심히 일을 배울 것이다. 정말 이렇게 일할 기회가 와서 다행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오랫동안 아파왔던 마음의 병을 이제 치유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내가 맡은 제일 중요한 엄마 역할 이전에 착한 딸로 인정받고픈 마음어린 셋째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인생은 흘려가는 게 아니라 돌아가는 것이라는 것도… 부모님이 계신 마음의 고향으로…
시집간 이후, 처음으로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딸이 되었는데 …그래서 기쁘고 또 기쁜데 그런데도 자꾸 눈물이 난다. 돌아가신 부모님께 ‘엄마 아빠 많이 죄송합니다. 열심히 살아서 누가 키운 딸이 이렇게 이 나이에도 일을 찾아 잘 사나 세상이들이 궁금하게 하여 꼭 키운 공덕에 보답하겠습니다’ 하고 약속했다. 이 나이에도 이렇게 엄마 아빠 앞에서는 그들의 딸이 될 수 있어 행복하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