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시작된 관계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더 알아가고자 일련의 질문들을 던진다.
취미를 묻는 말은 이름과 직업 확인이 끝나면 나오는 단골 질문이다. 생각해보면 자신의 생활방식 또는 사고방식을 듬뿍 보여줄 수 있는 기회임에도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형식적이고 식상한 질문으로 여겨 깊게 생각하지 않고 뻔한 대답을 내놓는다. 독서, 음악 감상, 쇼핑, 요리, 여행 등 고리타분한 옵션 중에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 골라 담아 내놓는 식이다.
내가 한참 면접을 보러 다니던 때에 가끔 면접관들이 여가에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다. 여행, 독서 등 평소에 그나마 자주 즐겨 하던 것 몇 가지를 읊곤 했는데, 어느 날 문득 나는 말을 마치자마자 방금 내뱉은 나의 대답이 얼마나 알맹이 없는 껍데기 같은지 깨달았다.
얼굴이 화끈거림과 동시에 지나온 삶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왔다. 그때 그 면접관은 내 대답을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의 내가 그였다면 나는 다시 반문했을 것이다. 어떤 책을 왜 좋아하며, 여행을 가는 목적은 무엇이며, 무엇이 나로 하여금 그 취미들을 지속하게 하는지, 다른 사람으로부터 차별화될 만한 특별한 취미는 없는지 등에 대하여. 결국, 그런 세부사항들이 나만의 취미를 정의하는 것이 아닐까.
취미가 무엇인지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크게 틀어질 수도 있고 전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을 것 같다.
내 진로를 선택하는 것만큼 중요할 수 있다고 판단해 정말로 나에게 딱 맞는 취미는 무엇인지 어떤 것을 할 때 내가 가장 순수하게 즐겁고 행복한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릴 적부터 내가 건물을 좋아했다는 사실이 다시금 떠올랐다.
아파트 분양할 때 아줌마들이 나눠주던 전개도는 내가 가장 흥미롭게 들여다보던 것이었고, 훗날 내가 살고 싶은 주택 전개도와 가구배치도를 그리며 행복한 상상에 젖곤 했다.
대학에 와서도 종종 해상도 끝내주는 건물 사진들을 찾아보며 기분전환을 하곤 했다. 나는 건축을 어떻게 하면 더 재밌고 특별한 나만의 취미생활로 접목할 수 있을지 고민했고 결국은 ‘건축 산책’이라는 생각만 해도 설레는 취미를 좀 더 정성스레 가꾸어보기로 했다.
최근 훌륭하신 소설가와 저녁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취미에 관한 가장 근사한 답변을 들었다. 천성적으로 세상의 ‘아름다움’에 가장 크게 반응하는 그분은 아기적부터 커다란 보름달이 아름다워 눈물을 흘리셨다 한다.
그래서인지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 작가들의 흔적을 쫓아다니며 그들이 느꼈던 사랑, 연민, 고뇌, 행복의 아름다움을 향유하는 것이 취미라 하셨다. 정말 자신을 뿌리부터 잘 이해하고 있어야만 나날이 깊이를 발전시킬 수 있는 취미가 아닌가 싶어 존경스럽고 부럽기도 했다.
그녀를 만나고 돌아오니 집이 살짝 낯설었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산 옷, 책, 잡지 등 물건 하나하나에서 나를 찾아보려 했다. 어떤 물건들이 진정으로 나를 표현하는 것인지, 어떤 물건들에 나의 기억 또는 설렘이 녹아있는지.
생각보다 많은 물건에 아무런 기억도 없었고 애착도 가지 않았다. 동시에 내 집에 있는 모든 물건들이 정말 나 다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활동적인 취미뿐만이 아니라 나를 나타내는 모든 소유물에도 책임을 져야 할 나이가 되었나 보다고, 즐거운 반성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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