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무덥던 여름이 지나고 9월 초로 들어서자 하늘과 구름의 높이가 마치 한국의 가을을 연상하게 한다. 가을이 되면 아버지에 대한 추억과 함께 늘 생각나는 한 그루 꽃나무가 있다. 바로 백일홍이다. 백일홍은 추위에 약해 한국의 충청도 이북지역에서는 매우 키우기 어려운 나무로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하다.
한국에는 봄과 가을에 피는 꽃은 많으나 한여름에 꽃 피우는 나무는 드물어 백일홍 나무를 무척 귀하게 여겼던 것 같다. “한 번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 100일 동안 빨간 꽃이 지지 않고 핀다 해서 백일홍이라고 이름지워졌다”고 아버지께서 알려 주셨다.
이런 백일홍이 베이지역에서는 무척 흔하다. 꽃의 색도 빨강 하양, 노랑 등 참 다양하다. 무더운 여름 베이지역 가로변 곳곳의 풍성한 백일홍(배롱나무) 꽃을 보면 나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추억에 포근한 느낌을 받는다.
내가 태어난 서울 집 마당 한가운데 어른 팔뚝만한 밑동의 백일홍 한그루가 있었다. 서울지역에서는 보기 드물게 큰 백일홍이었다. 여러 나무가 많이 심어진 마당에서 유독 백일홍 나무를 아버지께서 귀히 여기고 많은 정성으로 키우신 기억이 생생하다.
특히 추위에 얼어 죽는다고 늦가을에 볏짚을 사서 나무 밑동과 줄기 윗부분까지 총총히 덮어 잘 싸주는 것이 겨울나기의 큰 일과였고 그 결실로 7~9 월까지 백일홍이 만개하면 그렇게 뿌듯하게 기뻐하시는 아버지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지금처럼 베이 곳곳에 대표 가로수 백일홍이 만개할 때면 부모님에게 응석 부리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가 미국의 아름들이 백일홍을 보시면 뭐라 하실지도 궁금하기도 하다. 베이지역의 백일홍이 누군가에게는 흔한 가로수일 뿐이지만 나에게는 이국에서 부모님에 대한 향수를 달래는 소중한 추억의 나무인 것이다.
이처럼 대다수 사람들은 남모르는 자신만의 추억을 하나쯤 가지고 있고 이국에서의 향수를 달래는데 그 추억은 소중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오늘도 길가의 백일홍 나무를 보며 이제는 시대흐름에 맞춰 아파트에서 살고 계시는 90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건강을 기원한다.
우리 조상들은 백일홍 꽃을 식재료로도 사용하였는데 꽃잎을 말려 차로 마시고 튀김이나 국을 끓여 먹기도 하였고 잎과 뿌리는 백일해 기침, 여성들 방광염, 대하증, 냉증, 불임에 좋다고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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