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걸고 둔다
1962년, 처음으로 비행기 타보는 것이 마냥 즐거운 6살의 어린 소년은 조남철 국수의 손을 꼭 잡고 비행기 트랩에 오른다.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바둑유학을 위해 장도에 오른 것이다. 4살에 바둑을 배워 5살에 바둑 신동 소리를 듣고 큰아버지인 조남철 국수의 추천으로 일본 기타니 미노루(木谷實) 9단이 경영하는 바둑도장에 내제자로 입적하기 위해 도일하는 것이다.
“명인이 되기 전에는 한국에 돌아오지 않겠어요” 하며 당당한 각오를 보였던 소년 조치훈. 그런 씩씩한 아이에게 결국 눈물을 보이고만 부모님을 뒤로 하고 멀리 떠나온 한국이다.
그러나 일본의 현지 사정은 그렇게 녹녹하지만은 않았다. 낯설고 눈 설은 곳,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의 초기 일본생활은 그에게는 너무나 벅차고 힘든 하루하루였다.
위로는 많은 일본인 동문 선배와 어렵고 무서운 일본 선생님. 의지할 데 하나 없는 머나먼 타국 땅에서 첫 번째 관문인 일본기원 프로 입단의 길은 너무나 멀고 길었다. 그 정도의 실력이면 금방이라도 통과할 것만 같았던 입단 관문을 벌써 몇 년째 낙방의 쓰라린 좌절로 맛보고 있는 것이다.
당시를 회고하며 그는 이렇게 말한다.
“도일 후 5년이라는 기간 동안 하루도 바둑을 놓아 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매년 입단대회 낙방을 하고 낙방할 때마다 정말 죽고 싶었다. 오로지 동생의 뒷바라지를 위해 같이 동고동락하는 형의 눈길이 너무 무서워 이번에도 입단을 못하면 닛코(日光) 폭포에 빠져죽으려고 했다.”
아마도 그때서부터 ‘목숨을 걸고 바둑을 둔다’는 말이 생겨났을 것이다. 드디어 도일 후 5년 만에 입단했다. 11세 9개월이 되던 해였다. 그 후로 그는 매년 승단도 하면서 승승장구하여 일본의 타이틀 유망주로 떠오르게 된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일본에는 많은 바둑 타이틀이 있다. 명인(名人), 혼인보(本因坊), 기성(棋聖)의 메이저 타이틀과 7대 타이틀 천원, 십단, 왕좌와 일본 선수권전 등….
그가 최초로 타이틀에 도전하게 된 것은 1975년 일본 기원선수권전. 당시 그는 6단으로 당대 최고의 기사 사카다 에이오(坂田榮男) 9단과의 결승 5번 기를 치르게 된다. 그러나 2연승 후 3연패로 다시 한번 좌절의 쓰라린 맛을 보게 된다. 20살의 청년이었던 그에게 타이틀전의 처음 패배는 너무나 아픈 기억이었다.
걷잡을 수 없는 절망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그는 무작정 길을 떠난다. 누군가를 찾아가기 위한 여행이었다. 그리고 찾아간 곳은 북국 홋가이도. 늘 누나처럼 외로운 이국청년을 따뜻하게 대해주던 교꼬(京子)를 만나기 위해서다. 학생시절 학원에서 같이 붓글씨를 배우며 알게 된 연상의 여인이다.
그는 그때를 회고하면서 “홋가이도는 말 그대로 설국(雪國)이었다. 끝도 없이 하얗게 눈 쌓인 거리를 걷고 걸으면서 처음 잡아본 교꼬의 손은 너무나 따뜻했었다”고 말한다.
아마도 그때에는 벌써 그의 마음속에 그녀가 들어 있었던 것 같다.
다음해 봄이 오고 나가타(新瀉) 강변의 벚꽃이 만발한 벚꽃나무 밑에서 그는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하게 된다. 그의 나이 21세, 교꼬는 6살이나 연상인 27세였다.
그 이후 그는 멀게만 느껴졌던 일본 최고의 타이틀인 명인전에서 우승해 명인 타이틀을 획득하게 되고 일본 부인 교꼬를 동반하여 한국으로 금의환향하게 된다. 한국정부는 그에게 은관문화훈장을 수여하였다.
그리고 그는 80년대 90년대의 일본 바둑계를 평정하며 바둑천하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게 된다.
일본의 메이저 타이틀인 기성, 명인, 본인방, 대삼관(大三冠)을 4년 연속 보유하기를 비롯하여
기성 8회, 명인 9회 본인방 12회 등 그랜드 슬램의 위업도 이루며 통산 타이틀 74회로 일본바둑역사상 최다 타이틀 보유기록을 가지고 있다. 살아있는 전설이 된 것이다.
성공에는 고통이 따르고
그러나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했던가. 그동안 숙환으로 투병생활을 하던 영원한 동반자 부인 교꼬(65)여사가 지난달 7일 별세하였다는 비보가 들려왔다. 아직도 현역으로 열심히 기록을 세우고 있는 조치훈(59) 9단에게는 너무나 안타까운 소식이다.
그와 그녀와의 슬하에는 1남1녀가 있다. 가족장으로 조용히 장례를 치렀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는 말한다. 그의 어록에서.
“바둑은 언제나 어렵고 힘들다. 우리네 인생처럼. 하지만 성공의 뒤안길에는 고통이 늘 있었고 그 어려움이 있기에 바둑은 둘 만하다.”
그에게 다시 또 힘든 시련이 닥치고 있다. 이제 남은 인생에서 치열하고 처절하게 산화해버리고 정말로 목숨을 걸고 두어야 할일이 어딘가 남아 있을 것 같다.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위하여. choi1581@daum.net
풍운재 최환정(Charles Choi)
미국바둑협회(AGA) 공인 7단
워싱턴바둑동호인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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