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화가 유영준의 작품전이 시카고의 앤드류 배 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유영준은 지난 10여년 꾸준히 같은 화랑에서 새로운 작품을 선보여 왔다.
“대담한 메타포, 암호화된 상징, 현 시대와 동떨어진 것들의 시적수용, 언어의 웅장함과 모호성, 무어라 규정할 수 없는 비장감, 그로 인한 해석상의 열린 특성 …”
언젠가 유영준의 화실 벽에서 본 적이 있는 문장이다.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에 관한 글인데 유영준의 예술관을 엿볼 수 있는 글이다.
어렸을 적부터 릴케를 사랑한 그녀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릴케의 시가 그녀의 핏속에 흐르고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자신을 비우고, 예술의 위대한 정신들로 가득 채우고 변용해온 그녀의 의식은 가장 고대적이기에 가장 미래적인 인간의 원형을 꿈꾸고 그려왔다. 지난 50여년의 강렬한 그림 그리기와 정신세계를 향한 열정적인 추구가 탄생시킨, 가장 고독하고 심오한 인간상들이 수년간의 덧칠로 쌓아 올려 진 물감들의 심층을 뚫고 태동해왔다.
그림이 그려졌다기 보다는 마치 조각처럼 물감 덩어리의 물체가 되어 있다.
오랜 친구인 그녀의 집을 며칠 방문하는 일은 즐겁고도 흥미 있는 일인데 우린 밤새워 얘기하거나 뮤지엄에 간다. 유영준은 나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드문 친구 중의 하나이다.
40여년을 대화해 왔건만 매번 깊은 숲을 거닐 듯 늘 새롭게 발견되는 심층의 이미지들과 이야기들에 매료된다. 수없이 질문하고 함께 모색하고 발견해 나가는데 도대체 지난 50년 무엇을 그리려고 한 것이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무척 다정하고 겸허하게 말한다. ‘가장 선하기에 가장 아름답고 우아한 인간을 그리고자 한다’고 한다.
유영준에게 ‘아름다움’이란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알 수 없기에 아름다운 것’ 이라고 했다. 역설적으로 수수께끼가 아니면 그녀에게는 아름다움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아름다움은 해석되거나 설명되는 것이 아니고 직관적으로 감지되는 것이고 아직 창조되지 않은, 곧 태동할 새로운 미지의 그 무엇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번 그녀의 화실을 방문하여 발견한 매혹적인 그림(사진)은 ‘진정 우리가 기다리는 자는 누구인가’ 라는 긴 제목의 그림이었다.
모두가 저마다 어딘가에 시선을 두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함께 한 방향을 바라보는 영적이고 문화적인 진화의 의지를 지닌 인간들의 시선을 그렸다고 했다. 예수 재림의 메타포가 있고 현세의 삶에 우리가, 우리 민족이, 인류가 기다리는 그 무엇에 관한 그림이라고 했다.
유영준은 인간을 그리며 인간을 숙고하면서 인간에 대해 무한한 신뢰와 가능성을 마치 예지처럼 느낀다고 한다. 그 그림을 보며 우리가 꿈꾸는 새로운 인간과 새로운 시대가 이미 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그리고 있는 인간상을 묵상하며, 하늘과 땅을 잇는, 가장 관대하고 인내심 깊은 빛 밝은 영혼들이 바로 화가 자신의 영혼의 모습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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