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례의 48.5%가 화장 올 들어 매장률 앞서
▶ “추가 수입원 찾아라” 묘지관광 등 자구책
전국의 크고 작은 공동묘지에 일제히 ‘빨간불’이 켜졌다.
매장보다 화장을 선호하는 추세가 점차 강화되면서 분묘지 판매와 장례 수입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사상 처음으로 시신을 화장하는 비율이 매장하는 비율을 앞설 것이라는 관측에 화들짝 놀란 공동묘지 운영자들은 ‘망자’ 대신 ‘산 자’를 유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돈은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가 쓴다는 생각에서다.
‘루럴 블랙 리버 공동묘지협회’의 스티븐 릴리 사장은 “화장을 한 후 고인의 유골을 집에 영구보관하거나 야외에 뿌리는 유족이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라며 “이로 인한 수입 감소로 공동묘지 운영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뉴욕 코트랜드 루럴 세미테리’는 올 여름 44에이커에 달하는 공원묘지 구내에 산책로인 ‘세미트레일’을 개통하고 수목원을 조성했다.
방문객들을 위해 세미트레일 곳곳에 간이 쉼터와 안내판을 설치하고 그곳에 묻힌 유명 인사, 비석과 표지석으로 사용된 암석의 지질, 위령탑의 예술적 스타일, 수목원의 수종 등을 상세히 소개했다.
뉴욕주립대학(SUNY) 코트랜드 캠퍼스와의 공동작업을 통해 조성한 20개의 안내판에는 스마트폰으로 전체 내용을 스캔할 수 있도록 QR코드도 포함시켰다.
코트랜드 공원묘지 이사장인 존 회슐레는 “이곳을 단순한 추모공간에서 문화와 역사, 자연이 한데 어우러지는 장소로 재정립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세미트레일이라는 조어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공원묘지 산책로인 세미트레일과 20개의 쉼터는 ‘녹색공간 작전’이라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J.M. 맥도널드 재단에서 기부한 3만달러의 자금으로 조성됐다.
회슐레는 “음악회 무상기금에서 전시회나 뿌리 찾기 무상지원금에 이르기까지 각종 양여금이 판을 치지만 공동묘지를 위해 돈을 내놓는 독지가는 단 한 사람도 없는 실정”이라고 푸념했다.
지난 7월 전미장의사협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화장률은 2015년 말에 이르는 과거 10년 사이에 50% 이상 상승했다. 보고서는 이어 화장이 올해 전체 장례 건수의 48.5%를 차지하면서 사상 처음으로 전체 매장률을 앞설 것으로 내다봤다. 장의사협회는 올해 매장률을 45.6%로 추정했다.
일단 시신을 화장한 후 유골을 매장한다 해도 묘지 수입은 타격을 입게 된다. 여러 명의 유골을 한 개의 묘터에 공동으로 매장하는 것이 일반화된 데다 설사 단독 묘소를 사용한다 해도 면적이 일반 묘소보다 훨씬 적기 때문에 가격이 싸다.
뉴욕과 뉴저지 여러 곳에 공동묘지를 소유한 버나드 스테클린은 “묘지 운영을 책임지는 이사들과 신탁위원들이라면 누구나 우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화장한 유골을 매장하거나 지하 묘지, 혹은 납골당에 안치하는데 따른 수입으로는 도저히 수지를 맞출 수 없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묘지를 운영해야 할지 난감할 뿐”이라고 하소연했다.
규모가 크고 유명 인사 혹은 역사적 인물이 묻힌 공원묘지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가이드가 따라붙는 이른바 ‘묘지관광’으로 추가 수입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과외 수입을 올리는 방법은 묘지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버팔로에 위치한 포레스트 론은 매주 일요일 음악회와 강의 시리즈로 구성된 ‘선데이 인 더 세미테리’ 프로그램으로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다. 방문객들이 미합중국 13대 대통령인 밀러드 필모어를 비롯, 버팔로 출신 유명 인사들의 유택을 둘러볼 수 있도록 전차도 운행한다.
펜실베니아의 앨러게니 세미테리는 매년 여름 ‘Doo Dah Days’로 알려진 스티븐 포스터 뮤직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포스터는 ‘미국 민요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작곡가다.
캘리포니아의 할리웃 포에버 세미테리는 제법 이름이 알려진 관광명소다. 이곳의 관광자산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왕년의 스타들이 잠든 묘소다.
그러나 이름값 있는 자산을 갖지 못한 지방의 후미진 독립 공동묘지들은 급감하는 수입을 보충하기 위해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뉴욕주 북부에 터를 잡은 블랙리버 세미테리는 적자해소를 위한 고육책으로 일반의 발길이 뜸한 묘지 외곽 숲지대를 벌목장으로 개방했다. 또한 경비절감 차원에서 묘지 청소 및 미화작업을 인근 워터타운 교도소의 재소자들에게 의존한다.
알렉산드리아의 리버사이드 세미테리는 구내 토지 일부를 건초 재배자에게 임대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누적 적자로 묘지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코트랜드는 Suny 식당 주차장으로 묘지의 빈터를 내주었다. 역시 적자 보전이 목적이다.
오하이오주 마리온 세미테리는 ‘하나 사면 하나 공짜’ 전술을 활용해 매장지를 판매한다. 그러나 연중 프로그램은 아니고 메모리얼 데이를 전후해 실시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사상 처음으로 우편물을 통한 기금모금 캠페인을 시작했다.
미라온 세미테리 감독관인 짐 리들은 “방문객을 유치하기 위해 자동차 쇼 개최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공동묘지에서 자동차 쇼라니 해도 너무 한 것 아니냐” 지적에 리들은 “그나마 우리는 나은 편이다. 거의 매일 계란 찾기 게임이나 요가 강습을 실시하는 곳도 적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 하나는 작명권을 이용한 돈벌이다. 구내 도로에 고인의 이름을 붙여주는 대가로 유족들로부터 기부금을 받는 방법이다.
지나친 장삿속을 비난하는 반발여론이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지만 이 모두가 수지를 맞추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화장이 매장을 대체할 장의문화로 기세를 올리기 전인 10년 전까지만 해도 공동묘지 운영은 최소한 수지타산이라는 측면에서 전혀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는 안락한 업종이었다. 그러나 리들의 말대로 ‘왕년의 호시절’(good ole times)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미국 중북부에 속한 미시간주 레이 타운십의 프락터 세미테리는 향토사학회가 매년 발간하는 캘린더에 사진이 실리는 대가로 몇 푼 안 되는 후원금을 받는다.
이 지역 향토사학회의의 테리 고이키 회장은 “캘린더 제작 외에 매년 5월 프락터 묘지에서 표주박으로 새 집을 만드는 행사를 벌인다”며 “여기서 나오는 수익금 가운데 500달러를 후원금으로 제공한다”고 밝혔다.
국제묘지·화장·장례협회의 사무총장인 로버트 펠스는 “방문객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경영수지를 개선하는 작업은 관련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윈-윈’ 전략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적자개선을 위해 어떤 행사를 하건 망자와 유족들에게 피해가 돌아가는 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게 이 바닥의 불문율”이라며 “아무리 돈에 쪼들려도 묘지가 망자들이 잠들어 있는 장소라는 사실을 외면할 정도로 무분별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모든 행사는 고인과 유족에 대한 경의 속에 치러지며 어떤 경우에건 묘지를 난장판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코트랜드 공원묘지 이사장인 존 회슐레는 “다용도 공동묘지라는 개념을 불편해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둔다”면서 “우리에게 허용된 범위를 넘어서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욋돈을 벌 요량이면 ‘좀비들의 경주’를 실시하는 것이 어떠냐는 흥미로운 제안을 받았지만 고민을 거듭한 끝에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소개했다.
‘좀비들의 5킬로 경주’를 주최하면 돈이야 들어올지 몰라도 여론의 뭇매를 맞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그는 “창의적이면서도 묘지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는 행사를 발굴하는 작업은 고공 외줄타기처럼 늘 어렵고 아슬아슬하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김영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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