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에서 가을이 여러번 왔다 갔다. 어릴 적에는 추석이 지나자마자 가을이 왔다. 알록달록하던 여름옷을 옷장에 넣고 무채색의 옷으로 바꿔 입는 순간 가을을 맞던 20대도 있었다.
바쁘게 생활하던 30대 회사생활 중에서는 점심시간 몰려나간 식당가 맞은편 신호등 앞에서 바라본 높은 하늘에도 문득 가을은 왔었다.
그런데 캘리포니아에 살게 되면서 가을은 숫제 없는 계절처럼 멀리 있다. 열어둔 창문으로 들어오는 밤바람이 차가워졌으니 가을이다 싶을 뿐이다.
이 계절에 문득 누군가에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사람 사귀는데 한두 마디의 말보다 좋은 소통 도구가 편지였던 걸 기억했기 때문이다.
마음이 닿기에는 서로 만남이 적고 그렇다고 그냥 보내기 아쉬운 지인들에게 썼던 수많은 편지가 있었다. 이야기하지 않고 못배기던 열로 들끓던 마음이 가라앉아서인지 이메일이라는 도구의 발달로 더 간단하고 가볍게 지나서인지 편지는 아예 생활에서 빠진 지 오래다.
지난 9월 초에 우연히 저자의 자필 사인을 담은 소중한 책을 선물받았다. 그날은 햇살이 지나치게 맑은 일요일 오후였다.
수년 전부터 책이 멀어졌다. 빠르게 전개되는 소설에서 적응을 못했고, 다양해지는 소재에 발빠르게 맞추지 못해서다. 랩이라는 장르의 유행가도 적응못하는데 말해 무엇하랴. 그래서 점점 소설이 아닌 수필에 마음이 가곤 했다. 그런데 이 책은 수필이고 자서전이고 간증이었다.
황선생님, 책을 아주 잘 읽고 있어요. “화장실에서 가벼이 읽을 책이요.” 말씀하면서 전해준 환한 미소는 과한 겸손이었습니다. 저에게는 한 장 한 장 넘어가는 게 아까워 아끼는 책이 되었지 뭡니까. 책을 통해 저는 선생님을 알게 됩니다. 선생님이 자란 고향의 들과 산과 초등학교의 교정이 제게 이미 훤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글로 제게 상상하게 하셨고, 감동하게 하였고, 묵상하게 하였으니 저는 그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나는 이렇게 황선생님께 편지를 쓸 작정이다. 어느 날부터 유행가 가락처럼 삶이 가벼워지더니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라고 넉살좋게 말도 잘 붙이는 중년이 되었다. 이 가을이 다가기 전에 일면식만 있었던 황선생님께 마음이 감동하여 이렇게 따뜻해졌노라고 가을편지를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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