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유년시절에 겪어서 익숙하겠지만 동네아이들 싸움에서 ‘선빵 필승’이라는 속어가 있다. 비겁해도 먼저 때려서 상대 아이의 코피를 터뜨리면 이긴다는 뜻이다. 선제 폭행을 가했다고 법적으로 반드시 불리한 것도 아니다. 통상 상대방도 반격을 하게 되니 쌍방 과실이 되는 경우가 흔하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도 ‘선빵 필승론’이 통용되는 모양새다. 초국가적인 규제기구가 없다 보니 더 노골적이다. 일본이 불을 지른 환율전쟁이 대표적이다. 아베 신조 총리는 지난 2012년 말 경기부양을 이유로 윤전기를 돌려 돈을 무제한으로 찍어냈다. 이에 질세라 유럽도 통화가치를 떨어뜨리기 위해 마이너스 금리에 이어 양적완화 조치를 도입했다.
중국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지난달 11일 위안화 가치를 기습적으로 절하했다. ‘이웃나라 거지 만들기’ 정책을 주도했던 일본은 이달 초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낯 뜨겁지도 않은지 중국이 시장 불안을 키우고 있다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자신들이 먼저 엔화가치를 떨어뜨려 불황을 해외로 수출하고 이웃 나라의 ‘단물’을 빼먹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모양이다.
독일·영국 등 대다수 국가가 “위안화 가치절하는 경제구조 개혁이 목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던 것과 대비된다. 미국의 경우 일본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다. 중국에 선수를 빼앗기면서 달러화가 더 강세를 보이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 인상 일정도 어그러졌기 때문이다. 투자가들도 불과 일주일 전만 하더라도 중국을 시장불안 요인으로 지목하더니 지금은 FRB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이 더 문제라고 아우성이다.
하지만 미국은 일본과 달리 염치가 있는지 중국에 대한 전면적 공격은 자제하고 있다. 사실 이번 환율전쟁의 뿌리가 미국이기 때문이다. 벤 버냉키 전 FRB 의장의 표현대로 헬리콥터로 돈을 살포하는 바람에 미 경제는 회복됐을지 몰라도 신흥국은 달러 부채증가, 자산거품, 외국인 자본유출 등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
미국은 1930년대에도 금본위제 포기 등 환율전쟁을 주도해 대공황 위기를 가중시킨 전력이 있다. 그 피해는 뒤늦게 통화가치를 끌어내린 다른 나라에 더 많이 돌아갔고 수요 급감에 각국의 정치·경제적 혼란이 커지면서 2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됐다. ‘제 코가 석 자’일 때는 선수를 쳐야 이익이라는 교훈을 알려준 셈이다.
지금도 글로벌 경제는 각자 도생의 시대로 치닫고 있다. 지난 G20 회의에서도 ‘저성장-저물가 극복을 위해 구조개혁, 투자확대 등 단호한 조치 추진’을 공언하지만 관련정책은 재탕·삼탕에 불과하고 구속력이 없어 공허하기 짝이 없다. 가령 ‘경쟁적인 통화평가 절하 자제’를 합의했지만 각국 사정이 달라 환율전쟁이 사라질지 의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정부도 ‘이번 G20 회의에서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제안으로 글로벌 금융 안전망 점검사업이 결정됐다’는 식의 보도 자료는 그만 뿌렸으면 한다. 물론 G20 회의는 몇 안 되는 국제 공조시스템 가운데 하나이다. 또 한국이 주요 7개국(G7) 회원국이 아닌 만큼 G20을 통해 국제 발언권을 높이기 위한 정부의 노력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하지만 G20 회의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재정확대를 합의했을 때와는 달리 지금은 더 이상 중요한 위기극복의 채널이 아니다. 해외에서는 거의 주목하지 않고 실효성이 떨어지는 문구 하나 삽입했다고 걸핏하면 자랑하는 것은 아무리 봐도 ‘국내 정치용’으로만 보인다.
무엇보다 정부가 G20에 대한 환상을 키우면서 글로벌 공조 시스템에 금이 가고 각국의 ‘마이웨이’가 가속화하는 현실이 오도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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