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부터 국립국어원에서는 ‘너무’를 긍정적인 서술어와 어울려 쓸 수 있다고 했다. ‘일정한 정도나 한계를 훨씬 넘어선 상태로’라는 뜻이지만 그동안 ‘너무’는 부정적인 서술어에만 어울려 쓸 수 있었다. 너무 싫다, 너무 짜다는 것과 같이 지금의 상황에서 적절하지 않은 상황을 묘사하던 ‘너무’는 수십년간 어의의 변천에 따라 부정과 긍정의 서술에 혼동되어왔던 게 사실이다. TV 앵커들만 사용하던 ‘자장면’이 우리의 삶에서 ‘짜장면’으로 혼용되어 인정받았듯이 ‘너무’도 마침내 긍정과 부정을 모두 포괄하는 언어로 기세를 인정받았다.
어릴 때부터 격정적인 성격이었던 나는 ‘너무’를 많이 사용했다. ‘너무’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하는 기대로 많은 일을 전전했다. 사십 대 중반이 되면서 괜히 초초해지는 날이 많았다. 겸허하고 간소하게 나이를 먹는 게 아니라 자꾸 일을 벌이면서도 채울 수 없는 공허가 있었다. 그 공허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점차 줄었다. 내 생에서 보람이라 불리는 허영을 채우는 일이었나 보다.
한국어라고는 ‘엄마, 아빠, 먹어, 아니야…’ 같은 말밖에는 모르는 이 동네 어린이들을 실리콘밸리한국학교에서 만났을 때 나는 묵직한 책임감이 들었다. 이 지역에 이렇게 많은 한국 어린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한국과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토요일에 졸린 눈을 비비고 나온 아이들이다. 머리에 제비집도 짓고 침자국이 얼굴에 선명한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그런 어린이들 천이백명이 모국어를 배우러 실리콘밸리한국학교에 등교할 때 그 차량 행렬만 봐도 뿌듯하다.
이 학교에서 한글을 가르치고, 한국의 문화를 전달하고, 한국의 풍습을 이야기할 때 아이들은 저마다 입을 달싹거린다. 제집에서 경험한 한국의 말과 문화가 많든 적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초봄, 설날 잔치에 많은 전통놀이를 했다. 제기차기, 딱지치기, 공기놀이, 짚신던지기 등을 하면서 아이들은 흥분했다. 그 아이들이 “The best Saturday ever”라고 소리치면 달려와 포옹을 해주었을 때 나는 이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자신을 힘들게 하며 ‘너무’ 일 욕심을 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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