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버클리에서 같이 교환학생을 하던 친구 J는 “내가 만약 남자라면 샌프란시스코 같은 여자랑 사랑에 빠졌을텐데”라고 말한 적이 있다.
마음 설레게 하는 바람이 불고 바다로 둘러싸인 자유롭고 우아한 샌프란시스코는 확실히 여성적이다. 안개 낀 샌프란시스코의 정경을 바라볼 때면 내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을 곁에 두고 살고 있는지 새삼 놀라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샌프란시스코에 대해 나는 그동안 팔짱 낀 관람객의 자리에 머물러왔다. 샌프란시스코라는 공간을 충분히 탐구하고 애정을 쏟기엔 아무래도 나와 나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이 벅찼기 때문이었다.
지난 2년 간 나는 거주지를 옮겼고 결혼을 했고, 예쁜 딸의 엄마가 되었다. 짧은 시간동안 아내와 엄마라는 역할 한 가운데에 서고 나니 아무래도 내가 찬탄을 보내는 대상에 그에 합당한 애정을 보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늘 머릿속으로는 내가 사랑하는 도시의 아무도 모르는 골목골목을 누비면서도 실제로는 틈날 때마다 소심하게 피셔맨스 워프나 페리빌딩 같은 관광지를 둘러볼 뿐이었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 더 적극적으로 샌프란시스코를 알아봐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아기가 5개월에 접어들면서 조금 더 외출이 편해진 탓도 있고, 최근에 읽은 어떤 책 때문이기도 한데, 늘 그렇듯 이유는 이유일 뿐이고 중요한 건 마음이 때맞춰 방향을 틀었다는 것이다.
나는 학창시절부터 여행을 좋아해서 남미와 아프리카 중동 등지를 배낭 하나 달랑매고 다니곤 했는데, 그때는 비교적 장기여행이긴 했어도 끝이 있는 여행이었고, 또 동반자 없이 나홀로 하는 여행이었다.
이제는 여행의 어려움이자 동시에 동기부여가 되어줄 딸과 함께 일상을 쪼개서 하는 탐험이다. 어떻게 보면 고립된 섬 같은 육아에서 탈출하기 위한 발악인 것 같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낯선 골목을 누빌 기대에 설레이기도 한다.
여행지가 아닌 삶터를 인생의 동반자랑 여행하는 건 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그래서 새로 시작한 여성의 창 지면은 딸과 함께 한 샌프란시스코 탐험기를 공유하기 위한 장이 될 것 같다. 일상에서든 여행지에서든 다들 Bon Voyage(즐거운 여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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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일씨는 연세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정치학을 전공했고 서울대학교에서 국제협력을 전공했다. 현재 버클리에 거주 중이며 번역 및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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