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를 탐험하는 대신 버클리의 집 앞 골목길만 주구장창 산책했다. 몇 가지 사정으로 계획한 바를 이루지는 못했지만(이러다가 삼개월이 지나도록 한 번도 샌프란시스코를 밟아보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여름에 태어난 딸이 난생 처음 경험하는 계절의 변화를 가능한 많이 느끼게끔 해주고 싶어서 매일매일 아기띠를 하고 집 문을 나섰다. 코 끝을 스치는 바람이 다소 서늘해지긴 했지만 사실 집에만 있기엔 가을이라고 믿을 수 없을만큼 따뜻하고 화사한 햇빛이 아깝기도 했다.
버클리에 살면서 제일 좋은 점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날씨라고 말할 것이다. 너무 춥지도 또 너무 덥지도 않은 날씨가 사계절내내 지속된다. 봄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고 여름엔 눈이 부실만큼 찬란한 햇빛이 쏟아지다가 포근한 가을이 지나고나면 일년 중 드물게 비를 구경할 수 있는 겨울이 문 앞을 스치고 지나간다.
자연의 모든 것이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존재해서 이따금씩은 창밖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날씨보다 더 좋은 건 이런 좋은 날씨를 적극적으로 느끼고 즐길 줄 아는 이 동네 사람들의 태도인 것 같다. 한국에서는 계절의 변화를 느끼지도 못한채 지나가기가 일쑤였고, 파랗게 자란 풀밭은 밟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고 교육받았는데, 버클리에서는 웃통마저 벗어재낀 어른들이 풀밭에 누워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며 책을 읽는 모습을 심심치않게 볼 수 있다.
가까운 틸든파크나 동네 뒷산만 가도 아이들이 그야말로 자연에 푹 안겨 그림자가 알록달록하게 드리워진 관목들 사이로 다람쥐랑 같이 뛰어다니면서 노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자연이 그저 보호해야 하는 관상물이 아니라 상호작용하는 대상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딸이랑 가능한한 더 자주 주변에 핀 꽃과 바람,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고 돌아다니는 사슴들의 모습을 즐기고 싶다.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의 씨앗은 그것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누리는 경험에서 나온다고 믿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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