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의 경지
“바둑에도 신(神)이 있다면 3점 치수로 목숨을 걸고 도전을 해보겠다.”
일본의 기성으로 추앙받던 후지사와 9단의 말이다. 무술이나 바둑이나 최고의 수준에 오른 사람을 칭할 때 신의 경지에 가까워졌다는 말을 한다. 바둑기사가 프로로 입단하여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단위인 9단이 되면 입신(入神)이라는 칭호를 붙여주기 때문이다.
9단이면 매년 1단씩 승단이 된다고 하더라도 9년이라는 세월이 걸린다. 그리고 매년 승단이 그렇게 쉬운 것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기원 소속 2백 명이 넘는 프로들이 매년 승단대회에 참가하여 각조에서 우승을 하여야 하고 높은 승률에 의해 입단을 한다고 하니 이것은 일반 어느 조직의 승진시험보다도 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도 입단대회의 승률이 좋지 않아서 몇 십 년을 승단을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는 프로들도 많다. 일부의 프로기사만이 9단의 영광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창호는 세계 바둑인들 모두에게서 입신의 경지를 벗어난 살아있는 바둑 신으로 불린다.
동양 삼국의 바둑전쟁
88올림픽 이후 한국은 경제적으로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고 바둑역시 불세출의 바둑황제 조훈현 9단의 활약으로 바둑선진국 일본과 종주국이라고 자부하는 중국을 누르고 동양 삼국 열전에 패권국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로써 세계바둑 판도에 변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당시 세계바둑계는 각국이 상당한 거금을 출자하여 중국의 바둑올림픽(응씨배), 일본의 세계대회(후지쯔배)가 새로 창설, 개최되고 곧이어 90년 한국 최초의 세계대회(동양증권배)가 창설되었다.
그 이후에도 중국의 춘란배, 도요타 덴소배, 한국의 진로배 등 많은 국제경기로 바둑의 세계화가 이루어졌었다. 동양 삼국의 바둑 패권다툼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농심의 국가대항 삼국열전
신라면을 개발하여 13억 중국인의 입맛을 바꾸었다는 식품회사 농심이 1백만불 이상의 자금을 출자하여 최고의 상금을 걸고 2000년 새롭게 국가대항 바둑대회를 개최했다. 이름 하여 농심배 한중일 국가대항전. 우승상금 5억에 1승 대국료 1천만 원으로 2015년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한중일, 각국의 국가대표 5명씩을 선발하여 각국을 오가며 벌어지는 단체전 형식이다. 85년도에 이루어졌던 중일 슈퍼 대항전의 방식으로 한중일, 삼국의 국가대표 기사가 돌아가며 일대일 혈전을 벌여 지면 떨어져나가고 승자는 상대국의 2장과 승부를 벌이는 연승전이다.
여기의 한국 측 수문장은 이창호 9단이었다. 한중일, 국가대항 바둑대회에서 6년 연속 우승을 이루고 국가대표 주장으로 출전하여 우승을 이끈 주역이 된 것이다. 중국과 일본의 천하맹장들이 한국의 선봉장들을 무너트리고 돌진을 하여 성문에 당도하면 언제나 수문장으로 버티고 있는 바둑귀신 이창호 9단이 있었다. 그의 귀신같은 창끝에 중국과 일본의 장수들은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6년 동안 무려 30연승 무패, 세계대회 유례가 없는 기록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 대회의 백미(白眉)는 2005년에 이루어졌던 제6차 농심배였다. 상하이 대첩이라 불리는 이 대회에서 선봉장으로 나섰던 한국의 네 명의 장수들이 제대로 힘도 못쓰고 초전박살로 무너지고 한국 측 진영에서는 초 비상사태가 벌어진다. 결승에서 5명의 적장들이 몰려 쳐들어온 것이다.
관운장처럼 청룡도로 적장들 참살
일본 소속의 장쉬 9단, 왕민완 9단, 중국의 러쉬허 9단, 왕레이 9단, 왕시 5단, 어느 누구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더구나 장소는 중국 상하이. 그리고 상대는 중국의 맹장들이다. 13억 중국인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벌어졌던 1대5의 혈전이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당시 이창호는 많이 지쳐 있었다는 것이다. 5년 연속 수문장으로 많은 격전을 치루어왔고 한국에서의 계속된 대국과 여러 가지 사정으로 승률이 좋지 않을 때였다. 누가 봐도 연속으로 5번의 대결을 이기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특유의 무덤덤한 돌부처의 형상을 한 채 전광석화 같은 청룡도를 휘두르며 적장들을 참살한다. 마치 삼국지에서 촉의 장수 관운장처럼 5명의 적장을 5관 참장한다. 그리고는 만천하에 고한다. 한국바둑이 천하 제일국임을 소리 높여 외친 것이다.
중국에서 그는 유명인사다. 중국 총리 이름은 몰라도 이창호의 이름은 기억하고 있을 정도라고 중국신문들은 떠들어댄다. 살아있는 바둑귀신이라고 부르면서다.
제6회 농심배는 세계 바둑사에 길이 남는 대기록이었다. 그 이후에도 8회와 11회 대회 때도그는 주장으로 참가, 우승하였다. 지금까지 한국 11회 우승, 중국 4회 우승, 일본 1회 우승이다. 2015년 10월 현재 17회 대회가 중국 충칭시에서 진행 중이다.
choi1581@daum.net
풍운재 최환정(Charles Choi)
미국바둑협회(AGA) 공인 7단
워싱턴바둑동호인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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