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미소니언 아메리칸 아트 박물관 2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 식민지로서의 미국, 이민자들로서의 미국

조지 캐틀린, Stu-mick-o-sucks, Buffalo Bull’s Back Fat, Head Chief, Blood Tribe. 1832, oil on canvas, 토마스 콜 Home in the Woods, 1847, 토마스 콜 The Pilgrim of the Cross at the End of His Journey, ca. 1846-1848, oil on canvas(왼쪽부터 시계방향)
미국 미술이란?
미국 미술을 들여다보면, “아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였지” , 그리고 “독립 후에도 끝없이 수도 없는 많은 종족들이 이 나라로 이민을 와서 세운 나라였지”라는 역사적 사실을 새삼 돌아보게 한다. 요즘 트럼프 등이 이민자들에게 퍼붓는 유세를 보면 인간이란 누구나 개구리 올챙이 시절 생각 못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이 나라에 먼저 왔다, 라는 기득권이 사람의 우위를 가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간의 과거를 돌아보며 역사를 배우는 중요한 이점 중의 하나가 겸허한 자세로 현재의 교훈을 찾는다는 것이다. 스미소니언 아메리칸 아트 박물관을 들어서면서 그 질문을 던질 법하다. 미국 미술이란 게 무엇이었지? 그 답을 찾아보는 것이 이 미술관에서 누릴 재미이다.
미국 초기 정착민 미술
처음 미국으로 건너온 청교도들의 생활을 영화를 통해서 접해왔다. 그들은 아무 것도 없었던 광활한 미국 땅에서 비참한 개척생활을 시작했지만 깊은 신앙심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이라는 나라도 형성되기 전이었으나 초기 미국인들의 종교는 분명히 ‘기독교’였던 때였다. 현재 공립학교에서 종교적 내용의 티셔츠를 입는 것조차 금지된 것을 보면 세월을 느낀다.
이 미술관에서는 1930년대 미국 초기의 회화나 사진들을 볼 수 있다. 미국이 너무 살기 힘들어서 ‘대공황(Great Depression)’ 시대라 일컬었고, 고용을 창출하고자 정부에서 댐이나 다리 등 큰 국가적 기간 사업을 벌이던 때였다.
이런 와중에도 예술로 그들의 삶을 표현을 하고자 했다는 것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위대한 점이다. 정부에서 배급하는 빵을 타먹기 위한 줄을 ‘브레드 라인(Bread Line)’을 기억하자는 취지에서, 워싱턴 디시에 나가면 ‘브레드 라인’이라는 카페테리아가 있다. 맛있고 인기 있어 항상 줄이 길게 서는데, 과거 힘들 때의 이름을 붙이며 지금은 얼마나 풍요로운지 감사하고 미국의 과거를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이다.
초기 정착민들은 구스타브 달스트롬의 ‘초기 정착민’ 에서처럼, 그들의 다양한 생활상을 표현하거나, 토마스 콜처럼 미국의 광활한 자연을 그렸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Patssi Valdez, The Magic Room, 1994, acrylic on canvas, romare bearden, Out Chorus, 1979, Earlie Hudnall, Jr. Flipping Boy 1983, gelatin silver print, William H. Johnson, Going to Church, ca. 1940-1941, oil on burlap, Herbert Bayer, Waste Paper to Package, from the Early Series 1942
서부 개척시대: 허드슨 리버 화파
더 일찍이는 19세기 미국 미술로 시작한다. 19세기에는 막 미국에 건너온 유럽 정착민들이, 유럽의 미술 즉 인상파 등을 수입해 왔거나, 처음 만나는 이 대륙에 대한 경이로움과 신기함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동부에 정착했으나 서쪽으로 점점 확장하며 나이아가라 폴, 허드슨 리버, 그리고 그랜드 캐년 등을 예술로 표현하였다.
이처럼 대자연의 웅장함을 큰 화폭에 담아내는 일군의 작가들을 허드슨 리버 화파 (Hudson River School)이라고 하며, 토마스 콜(Thomas Cole)이 처음 시작하였다. 그는 완전히 종교화를 그리기도 했지만, 웅장한 자연을 통해 종교심을 표현하기도 했다. 허드슨 리버파는 미국대륙의 발견, 탐험, 그리고 정착의 주제들을 다루되, 평화롭고 경이롭게 자연과 인간이 공존함을 표현하였다. 세세히 표현하며 사실주의적인 듯 보이나 이상화되었으며, 여러 장소에서 스케치한 것을 모아 놓았거나, 유럽의 어떤 부분을 재현하고 있기도 하여 순수 사실주의라고 하기는 힘들다. 자연광에서 최대한 빛을 표현했다는 점에서는 터너나 컨스타블 같은 프랑스 바르비종 학파의 연장선 같아 보인다.
그러나 유럽의 풍경화와 다른 점은, 허드슨 리버 화파들은, 미국의 자연을 그들이 믿는 기독교의 신의 현현으로 바라보았다는 점이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인간이 볼 수 없는 존재이나 자신을 드러내는(계시; revelation)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특별계시는 성경의 말씀들을 통해서이고, 일반계시는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느낄 수 있는 ‘신의 존재감’ 즉, 자연에 스며있는 ‘신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토네이도나 지진 같은 자연 재해를 통해서도 인간의 유한함과 신의 엄중함을 느끼지만, 광활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볼 때 느끼는 경외감은 공포에 가까운 조물주에 대한 감탄이다. 인간이 외소하게 느껴지고 인간의 유한함을 넘어선 어떤 정신성을 느끼고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숭고미 (sublime)’라고 하여 20세기 내내 미국 현대 미술의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아메리칸 인디언을 묘사
조지 캐틀린(George Catlin)은 최초로 아메리칸 인디언을 그린 백인 화가이다. 그는 펜실베이니아 출생이지만 서부로 여러 차례 여행을 하면서 인디언들의 다채로운 생활상과 문화를 표현하였다. 그의 여행을 통한 작품 600여점을 미국 정부에 팔기 위해 여러 차례 노력했으나 실패하여 죠셉 해리슨이라는 기업가에게 팔고 다시 400여점을 더 제작해서 스미소니언에 기증할 수 있었다.
해리슨의 미망인이 그의 초기작품도 스미소니언에 기증하면서 캐틀린의 전체 작품을 고스란히 스미소니언 아메리칸 아트 박물관이 소장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수집한 인디언들의 문화 유물들은 자연사 박물관이나 고고학 박물관 등에도 일부 소장되어 있다.
세밀한 인디언 족장들의 묘사를 보면 그의 애정과 열정이 느껴지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많은 부분에서 이들의 생활상을 왜곡하거나 과장하였다고 지적하는 평론가들도 있다. 어쨌든 이 위엄 있는 추장의 모습은 1846 프랑스 파리 살롱 (국전)에서 큰 찬사를 받았다. 필자의 한 가지 바람은, 초기 정착민이 바라본 인디언 뿐 아니라, 인디언 자신들이 제작한 작품들을 미국 미술관에서 볼 수 있으면 하는 것이다. 그들이 북미 대륙의 최초의 정착민 또는 유목민들이 아니었겠는가?
아프리칸 아메리칸 아트
아프리칸 인종이 어떻게 미국 대륙에 살게 되었는지는 모두가 아는 이야기이다. 노예제도는 링컨 대통령에 의해 폐지된 지 오래 되었지만, 흑인을 차별하는 인종주의는, 흑인의 피가 섞인 대통령이 미국을 다스린다 하여도, 줄어들었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흑인, 라티노, 아시안이 삼대 소수민족 계열이라고는 하지만, 이들이 이미 소수라고 하기엔 목소리도 입지도 많이 커져 있다.
아프리칸 아메리칸이 시기적으로 선두를 달리며 정치계, 운동계, 예술계, 그리고 비지니스에서 성공을 거두어 왔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자란 흑인작가 로버트 던칸슨은 어릴 때 자신의 가족이 소가 끄는 달구지를 타고 교회로 가는 소박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피카소나 야수파등 모던아트 형성에 영향을 미친 흑인 미술의 단순화된 인물묘사와 임의적인 색채 표현을 엿볼 수 있다.
초기 아프리칸 아메리칸 미술은 종교성이 강하였거나, 아프리카의 민속 미술을 강조하든지, 흑인의 아이덴티티 (정체성)에 관한 것이었다. 대표적인 작가들인 로메어 비어든, 제이콥 로렌스, 샘 길리언, 페이스 링골드이 남부의 이야기들, 즉, 대이동, 할렘, 재즈 시대, 흑인 인권 운동 등을 그리고 있다.
라티노 아메리칸 아트
또 하나의 무시할 수 없는 미국내 소수계 인종은 라틴 아메리칸이다. 이들도 미국 초기 정착민 시대부터 이 대륙에 들어와서 종교 미술이든지 수공 공예품부터 시작해서 추상 표현주의와 설치미술까지 다양하게 작품 활동을 하였고 스미소니언 아메리칸 아트 박물관은 80년대부터 이들의 작품들을 적극적으로 수집하였다. 멕시코, 푸에르토리코, 쿠바, 도미니칸 공화국 등 다양한 나라의 작가들을 수집하였고, 라티노 아메리칸 현대 작가들의 작품도 다양하게 전시하고 있다.
파시 발데즈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멕시칸 부모에게나 물려받은 라틴 아메리카의 정신, 문화, 성향을 그의 작품 속에 반영하였다. 현란할 만큼 밝은 색과 축제 분위기 그리고 경쾌함이 있지만, 동시에 정치적 문제나 여성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기도 하였다.
스미소니언 아메리칸 아트 박물관 콜렉션의 큰 구분 중에서 이번 달에 전체를 다루지 못하고 소수계 미국 그리고 미국 미술의 시작에 대해서만 소개하였으므로 정작 20세기부터 세계를 주도하는 미국 현대 미술 콜렉션을 다음 달 살펴보기로 하겠다.
●주소: 800 G Street NW, Washington, DC 20001
●문의: (202) 633-1000
●개장시간: 오전 11:30- 오후 7:00
●갤러리 플레이스-차이나 타운 지하철역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찾을 수 있다.
이정실 미술사 박사
●Director & Professor of Washington University of Virginia ●artrio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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