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생기고 난 후의 여행은 많은 면에서 다를 수밖에 없고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편이 싸다는 이유로 경유편이 있는 칸쿤 행 새벽 항공편을 끊었을 때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아기가 생기기 전에 같이 여행할 땐 저가 항공편을 여러번 갈아타는 것도, 추운 날 길바닥에서 자는 것도 전혀 힘들지 않았는데, 아기가 생기고 나니 그런 일들이 버겁게 느껴졌다. 아니 사실 장거리 여행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아기를 데리고 장거리 여행을 하기 싫은 이유에 대해 여러 차례 얘기해봤지만 남편의 실망한 눈을 보니 그만 마음이 약해졌다. 결국 몇 번의 말다툼과 화해 끝에 복잡한 심경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낯을 가리기 시작해서 엄마 껌딱지가 된 딸은 비행 내내 ‘내’ 차지였다. 비행이 힘들었는지 딸은 도착하자마자 칭얼대다가 잠이 들었고, 자다가도 여러 번 깼다. 잠이 깬 딸은 ‘내’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이럴 줄 알았어’ 하며 끝날 줄 알았는데 잊었던 휴식의 소중함이 여행 이틀째에 찾아왔다. 밤새 아기와 씨름하다 아침이 되어 눈을 뜨니 피곤함도 잊게 해줄 새파란 바다와 하얀 모래밭이 눈에 들어왔다. 바람은 오래전에 혼자 사막지역을 여행할 때 불어오던 바람처럼 세찼고, 생기넘치는 야자나무가 멋지게 흔들리고 있었다. 딸을 안고 오래오래 호텔 창문 앞에 서서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감상했다. 사실 그게 우리가 칸쿤에서 사박 오일간 한 일의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풍경 속에 놓인 나를 만난다는 건 일상의 반복에서 오는 피곤함을 잊게 해줄 무엇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가자는 남편도 또 다음 기회로 미루자고 했던 나도 완전히 옳지 않았지만, 칸쿤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그에게 고마워졌다. 여행과 휴식의 즐거움을 잊지 않아준 남편 덕분에 바쁜 육아로 인해 잊고 있던 자기 자신과 서로를 살펴볼 기회를 얻었으니까. 생각해보면 아기를 편안한 환경에서 양육하는 것만큼이나 휴식을 통해 잠깐이나마 여유를 찾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런 기특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옆자리에서 남편이 크리스마스에 뉴올리언스를 가는 저가항공을 검색하기 시작한다. 고맙지만 남편, 이번엔 안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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