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여회 전시회•100여개 공로패 ‘한인사회 마당발’
![차 한잔의 초대/ 한미문화원 주옥근 원장 차 한잔의 초대/ 한미문화원 주옥근 원장](http://image.koreatimes.com/article/2015/12/10/20151210082329561.jpg)
<사진 천지훈 기자>
김기창•천경자 선생에 그림 배워, 강남 최초로 화랑오픈도
‘시나위 1대 보컬’ 큰 아들 군대서 잃고 미국이민
봉사활동 할수록 재미있어... 팔순 넘은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
주옥근 한미문화원 원장은 미술단체는 물론 뉴욕한인회, 뉴저지한인회, 뉴저지상록회, 뉴저지대한체육회. 미주국악진흥회 등 굵직굵직한 단체마다 이름이 걸려있다. 한인사회 ‘약방의 감초’ 그를 만나본다
▲“아직 불러주는 곳 많아”
“큐레이터로써 미술 전시회나 문화행사를 주최하고 그림을 사고팔고, 또 아직 불러주는 곳이 많다보니 뉴저지는 물론 플러싱에도 자주 나간다. 동양화를 직접 배접, 표구를 만들고 액자를 만드는 일도 재미있기만 하다. 늦은 밤 한두 시간은 내 그림도 그리고 있다.”
주옥근은 한인단체 주요직책은 다 거쳤지만 현재도 뉴욕한인미술협회 이사장, 한국미술협회 지부장, 뉴저지한인회 자문위원장, 뉴저지 상록회 상임고문이자 운영위원장 등등 직책을 맡았다. “82세 되도록 아파본 적이 없다. 감기에도 걸리지 않고, 체력이 타고난 것 같아 고맙다.”
새벽 7시반에 일어나 8시면 뉴저지 메인스트릿 아파트에서 나와 차로 5분 거리인 그랜드 애비뉴 한미문화원 사무실로 가서 밤 12시, 일이 있을 때는 새벽 1~2시까지 일한다는 그의 열정이 놀랍다. 한미문화원은 1992년 5월 개관했다.
▲운보의 제자 ‘옥봉’
1934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난 주옥근은 왕복 8킬로미터를 걸어 금광 공립초등학교를 다녔고 초등학교 4학년때 8.15해방, 안성중학교 3학년때 6.25가 났다. 서울 동대문옆 동구여상에서 남녀공학으로 1년을 다니다가 보인상업고등학교를 거쳐 대신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1955년 홍익대학교 동양학과에 입학했다.
“학장은 조각가 윤효중, 운보 김기창 선생과 천경자 선생에게 그림을 배웠다. 운보는 미인도를, 천경자 화백은 엉겅퀴와 뱀을 자주 그리게 했다. ” 운보는 그에게 보석같은 봉우리로 빛나라며 옥봉(玉峰)이란 호를 지어주기도 했다.
주옥근은 대학 2학년때 홍대, 이대, 서울대 여학생 20여명과 성탄절 카드를 그려 백화점에 팔아 꽤 많은 소득을 올리기도 했고 3학년때 영화 사업을 시작하는 등 남다른 비즈니스 마인드가 있었다. “1960~1963년 대한보도사 문화부장으로 일하면서 1961년 동원영화사를 설립했다. 곽건 촬영감독을 두고 ‘ 청사초롱 ’ 영화를 제작하면서 종로 2가와 명동에서 영화인들과 한 시대를 보낸 적도 있다. 나중에 천경자 교수가 파란만장한 자신의 삶을 영화로 만들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1964년에는 신촌 이대 입구에 6층건물을 지어 주옥근은 원장, 아내 김민자는 부원장으로 서울종합자수학원을 운영했다. 당시 1,000명의 학원생이 있었고 기술자들은 전국 기능경기대회 자수부문에서 금상을 받고 상공부 장관상도 받는 등 한국인의 기술 개발에 기여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만든 족자, 그림, 공예품은 전국 각지로 나갔고 20여년간 해외 수출도 했다. 1969년~1987년 한국자수협회 이사를 역임했고 일본 엑스포(1970)에서는 자수공예 전시관을 운영하는 등 자수로 큰돈을 벌었다.
▲어느 날 닥친 시련
소공동 조선호텔옆 반도 아케이드에 화랑과 민예품 전시관을 열고 1977년 강남 압구정동 한양쇼핑센터(현재 갤러리아 백화점)내에 한양화랑을 오픈, 강남 최초로 화랑을 시작했다.
“사업도 잘 되고, 가정적으로도 화목하여 서울시와 서울시경찰국이 주최하는 모범가정의 마포구 대표로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부와 명성을 누리며 살던 주옥근은 35년 전 어느 날, 큰 시련을 당했다. 큰아들이 22세 나이로 군에서 갑자기 사망한 것. 운동, 음악, 요리 등 어떤 일도 잘하던, 인물까지 잘 생긴 아들은 군대별 축구시합 중 어깨 부상으로 간단한 수술을 해야 했는데 그만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아들은 신중현의 아들 신대철과 시나위라는 그룹을 만들어 1대 보컬로 활동하다가 ‘영 일레븐’ 프로에 첫 출연후 군에 입대한 터였다. 시나위는 아들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노래로 만들어 데뷔앨범을 발표했다. 임재범이 부른 ‘그대 앞에 난 촛불이어라’는 고 주준석을 애도하며 만든 노래이다. 주옥근은 아들을 대전국립묘지에 묻고 한국내 전 재산을 정리한 후 미국이민을 왔다.
▲미술 전시회만 100여회
1987년 4월 미국에 온 주옥근은 2주후인 4월말, 뉴저지 포트리 304 메인스트릿에 한국 화랑을 열고 새 삶을 시작했다. 20여년 전 창립한 뉴욕한인미술협회 주최로 전시회를 100여회 정도 열었다.
1992~1996년 미주서화협회 뉴저지지부장, 1995~1998년 대한체육회육상협회 회장, 1997~2000년 뉴욕한인회 부이사장, 1999~2003년 뉴저지상록회 회장, 2002년 한국미술협회뉴욕지역 지부장, 2002년 제1회 뉴저지한인추석대잔치 행사준비위원장, 2008년 뉴욕지역 홍익대 총동문회 회장, 2013년 미주한국국악진흥회 회장이 되었다.
또한 2002년 5월에는 북한 만수대 창작위를 방문, 북한작가 그림을 들여와 릿지필드 H마트에서 김기만, 선우영 등 ‘북한작가 13인전’을 열었고 2009년 제5회 뉴욕세계미술 UN본부 초대전을 열었다.
“미국에 온 지 5~6년 후에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 돌아가야겠다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선후배간 만남의 장을 만들고 어린이사생대회를 20여회 열어 후배 양성을 하며 보람을 느꼈다.”는 그다.
한국미술을 미 주류사회에 알리고 동포화합, 선후배간 우애를 위한 행사 등 다방면으로 활동해 온 그는 서울특별시장, 찰스 랭글을 비롯 뉴욕주 하원의원과 상원의원, 뉴욕한인회, 대뉴욕지역 상록회, 뉴저지대한체육회, 한국문화단체 총연합회 등으로부터 100여개의 공로패, 감사패를 받았다.
또한 미국에 살면서 주옥근은 스승 운보 김기창을 잊지 않았다. 지난 2014년 운보 김기창 화백 탄신 100주년 추모전시회 ‘예수의 생애’를 열었다. 1948년 화신백화점에서 전시한 운보의 ‘예수의 생애 성화’ 전이 60여년만에 뉴저지 한미문화원갤러리에서 재현된 것이다.
▲해외에선 모두 애국자
지난 2014년 11월 9일 뉴저지 파인 플러자 4층 연회장에서 결혼 50주년 및 팔순 기념잔치를 연 주옥근은 미국생활에 만족한단다. “한국에 가보니 친구들이 2명만 남고 다 세상을 떠났다. 뉴저지에는 친구들도 많고 거리마다 정이 들었다.
한국에 비해 친구들은 아직 다 건강하고 나 자신 젊은이처럼 돌아다니고 있다.” 아내 김민자와 슬하에 1남1녀 중 딸 상희는 갤러리 일을 함께 하고 있고 아들 준용은 회사 부사장으로 현재 일본에 거주한다. 지난 11월 15일 주옥근은 주뉴욕한국총영사관에 오전 7시반에 도착, 재외선거 신고신청 첫 번째 등록자로 꽃다발을 받았다.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첫번째로 신고신청하고 투표도 첫 번째로 했었다.
“당시 뉴저지에서 뉴욕으로 몇 번 오가면서 7일간 봉사했었다. 그냥 의무감이다. 어렵게 얻은 참정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을 보면 한국 국민의 한사람으로 안타깝다. 밖에 나오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 봉사활동은 하면 할수록 재미가 있다. ”
뉴욕과 뉴저지 한인단체들은 행사 때마다 주옥근을 즐겨 초청한다. 그는 빈손으로 가지 않는다. 꼭 그림 한 점을 도네이션한다. 그렇게 나간 그림이 290점이다. “성경책을 읽다보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25점의 성화를 그렸다. 훗날 내가 주님 곁에 가더라도 자손들에게 영원히 남을 것이다.“ 는 그는 ”머잖아 성화 개인전을 하고싶다.”고 한다.
한인사회 원로로써 그는 바램이 있다.
“한인사회가 예의를 갖추기 바란다. 선배는 후배를 사랑하고 후배는 선배를 존경하며 같이 나가면 얻는 것이 많다. 또 남에게 양보하면 꼭 자기에게도 기회가 온다. ”
팔순을 넘긴 주옥근은 오늘도 열심히 살며 사는 재미를 만끽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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